[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9) "니들이 노지 맛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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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9) "니들이 노지 맛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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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라이프를 시작하면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로 이주하기 전과 이후의 삶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 첫 경험을 유발하는 다양한 양식의 문화로 다가왔다.

서귀포의 첫 여름을 지나면서, 제습기의 소장 여부로 인해 달라지는 삶의 질을 알 수 있었다. 집안에서도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것과 같았는데, 부패한 음식에서만 보았던 곰팡이를 거의 모든 소재의 의류에서 발견하고는 세탁소가 단골집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뉴스를 보면서도 다음날 눈과 비가 오는지 아닌지에 따라 스타일을 잡을 수 있었던 아침의 풍경과는 매우 달랐다. 태풍이 언제 오려는지, 위력의 강도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비도 해야 하며 강한 태풍이 오는 날에 집콕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생명에 위협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사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단박에 알 수 있는 변화는 바람이다. 세팅과 드라이를 열심히 한 헤어스타일을 몇 초 만에 무너뜨려서, 시야를 가리고 걸리적거리는 머리카락을 빨리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질끈 묶어버린다.

스커트를 즐겨 입었던 덕에 다양한 스타일을 소장하고 있었지만, 란제리 패션쇼를 하지 않으려면 플레어스커트는 반드시 포기해야 하며, 하이힐을 신고서 갈 수 없는 길이 많으니 점점 굽은 낮고 넓어지더니 스니커즈로 변화되었다. 햇볕은 따가울 정도로 아파서 자외선 차단지수가 높은 선크림 또한 필수애정 아이템이 되어버린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는 위의 내용과는 달리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제주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인데, 매우 어렵고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중 실생활에서 자주 들었던 ‘노지’라는 단어의 낯섦에서 친숙해지는 경험을 통해 제주의 삶으로 녹아들게 되었다.

◆ 노지 것

서귀포시에 거주하면서 보니, 직장을 다니면서도 귤밭 하나쯤은 있는 터라 귤 농사에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듣고, 다양한 품종의 귤을 맛볼 수 있었다.

제주로 이주하기 전까지 감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겨울에 먹을 수 있는 과일 중에 하나로 하우스 감귤은 비싸지만 달콤하고, 보통의 감귤은 하우스 것보다 저렴하지만 새콤한 맛이 더 강했던 것으로 굳혀진 상태였다.

재배환경에 따라 노지, 하우스 등의 새로운 단어를 접하면서, 노지 감귤의 참맛을 알게 되었고, 하우스 감귤은 대용품으로 바뀌게 되었다. 수확하고 2~3일이 지나서 산기가 빠진 뒤에 맛보는 노지 감귤에서 달달하고 새콤하며 깊이 있는 건강한 맛을 알게 되어 그 진정성을 알게 된 것이다.

노지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사방(四方)과 하늘을 지붕이나 벽 따위로 가리지 않은 자리’로, 노지재배는 ‘보통의 밭이나 화단에서 채소나 꽃 따위를 가꾸는 일’을 뜻한다. 따라서 노지 감귤은 ‘보통의 밭에서 재배하는 감귤’이다.

하우스는 시설 하우스(施設 House)를 뜻하며, 시설 하우스 재배는 ‘노지가 아닌, 비닐하우스나 온실 등 채소나 화훼 따위를 재배하기 위한 설비’이다. 그리고 하우스 감귤은 ‘비닐하우스에서 온도와 습도 따위의 재배 환경을 인공적으로 조절하여 당도를 높인 감귤’을 말한다.

노지 감귤만큼이나 흔히 듣게 되는 문장에서 주어가 ‘노지 것으로…’이다.

제주에서 소주를 주문할 때 브랜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지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였다. 소주를 냉장고에서 꺼내지 않고 소주 박스와 혹은 따로 보관된 것을 마시는 문화는 냉장고에 넣어 두지 않은 맥주를 마시는 것이 아닌가 의아했지만, ‘노지 소주가 술이 덜 취한다. 소주의 참맛을 알게 된다.’ 등의 노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바다와 오름에 가기 위한 마음의 여정은 쌓여 온 무게를 툭툭 버리거나 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출발이다. 바다와 오름을 언급하는 것도 제주의 삶 속에서 경험한 변화이다. 9년 전 서울의 삶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자연을 찾아 자유롭게 누비면서 마음 다잡기 훈련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도시에서 익숙해졌던 숨 가빴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서귀포시의 노지는, 모든 것을 말하기도 하고 대표적인 특징으로 표출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 자리에 있었다.

◆ 서귀포시, 문화도시 지정

2019년도 12월 30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한 ‘법정 문화도시’로 서귀포시가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서귀포시문화도시’는 ‘105개 마을이 가꾸는 노지(露地)문화 서귀포’의 비전과, ‘미래세대를 위한 생태문화 X 문화생태 도시’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한 지역의 문화는 취향, 언어, 습성을 서서히 물들여서 카테고리를 형성하게 한다. 이것을 잘 다듬어서 훌륭한 요리를 완성하는 것이 이제 시작되고 있는데, 노지문화를 선택한 것은 서귀포 시민과 함께 가꾸고 키우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마치 하우스 감귤처럼 인공적으로 단맛을 높이거나 손쉬운 방법으로 이미 성공한 사례의 구도를 가져와서 재단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게 한다.

‘105개 마을이 가꾸는 노지(露地)문화 서귀포’라는 비전을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의 시간이 있었기에 쉽게 끄덕여지면서,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의 출발에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2024년도까지 주어진 기간에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를 공동체 정신으로 발전시켜서, 소중한 기회가 다가온 것에 아쉬워하는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서귀포시문화도시에서 정의하는 ‘노지’란 ‘사방과 하늘을 지붕이나 벽 따위로 가리지 않은 곳’을 의미한다.

서귀포시문화도시에서 표방하는 노지는 ‘이슬이 내리는 땅’이라는 장소적 의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파괴되거나 변형되지 않은 본연의 모습’, ‘생태적·자연친화적 상태’, ‘꾸미거나 거짓되지 않은 진솔함’까지 확대된 개념으로 미래세대에까지 지속할 수 있게 이어가야 할 서귀포다움의 원천을 뜻한다.

노지는 일차적으로 서귀포가 가진 생태적 문화자원인 한라산, 오름, 바다로 자연을 대표적인 문화로 설명하고 있다.

문화도시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시민이 공감하고 함께 즐기는, 그 도시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현상 및 효과가 창출되어 발전과 성장을 지속하는 도시”로 정의된다.

서귀포시문화도시의 정책과 계획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활용하여 문화 콘텐츠로 개발한다. 지역의 문화 인력을 양성하고 예술가 등 문화생산자를 지원하며 문화생태계를 활성화하고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이다.

계획의 배경은, ‘서귀포시의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에 따른 광범위한 개발은 서귀포의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생활공동체이자 문화공동체로서의 마을의 모습에도 큰 변화를 야기하여 노지 본연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노지와 노지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서귀포의 독특한 문화정체성을 일깨우는 문화공동체로 변화해야 정체성의 소멸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다.’는 노지문화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목표는 ‘기후 위기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도시의 미래를 위해 농업도시 및 관광도시의 패러다임을 혁신하는 것이자, 지역의 현재 자산인 노지문화를 서귀포의 문화시민들이 예술가와 문화생산자와 함께 보존하고 재생하여 문화적 가치와 생태적 가치를 융합한 서귀포다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여 문화경제 기반까지 만들어가는 것’이다.

◆ 입체적인 시각의 중요성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평면(캔버스)에서 입체를 잘 표현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 입체주의(Cubism)가 생겨나고, 서양미술사에서 입체파의 영향으로 미술의 발달은 풍요로워졌으며 다양성의 존중을 깨닫게 해준 것과 같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있는 대부분은 육면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객체가 가진 기본적인 앞, 양옆, 뒤, 위, 아래는 달라지지 않지만, 자신이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그 관점이 달라진다. 하지만 이것은 구도일 뿐,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바뀌지도 않는다.

피카소는 인물화를 그렸지만, 큐비즘을 이해하기 전에는 괴물처럼 보이거나 잘 못 그린 그림으로 보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피카소는 캔버스에서 인물의 앞모습을 그리면서도 시야에서 벗어난 옆모습과 뒷모습 혹은 윗면과 밑면도 함께 보일 수 있도록 그렸으며, 기존의 원근법과 명암법도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캔버스에서 실제의 입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피카소의 고민을 알고 바라본다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되니 본질의 시작과 가치의 바른 판단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작품=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 Avignon),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243.9×233.7cm, 1907. 사진 출처=뉴욕현대미술관 웹사이트(https://www.moma.org) 갈무리.
작품=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 Avignon),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243.9×233.7cm, 1907. 사진 출처=뉴욕현대미술관 웹사이트(https://www.moma.org) 갈무리.

서양미술사를 살펴보고 있으면 사이다가 필요한 순간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현재 쉽게 기억하는 작가와 작품들도 당시에는 비판과 비난에 휩싸였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인정받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축적되어 소화된 예술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큰 나무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나뭇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 당장 큐레이터와 이론가들 그리고 대중에게 인정받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초지식이 없으면 난해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매우 단순하지만 깊이 다가와서 공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술의 성장을 위해서 예술가들이 환경을 찾아서 떠나고, 아틀리에가 필요하며, 다양한 전시 공간이 있어야 하며,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와 예술가를 후원하는 파트론, 작품을 소장하는 컬렉터와 갤러리의 구조 등 많은 체계가 필요하다.

서귀포 시민으로서 서귀포시문화도시와 관련하여 많은 생각을 하던 중에 피카소의 큐비즘이 떠오른 것은 미술사와 양식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가져야 할 태도적 위치에서 설명하기 위함이다.

끝을 봐야 새로운 시작이 되고, 시작하고 잘 끝나려면 쓸데없는 덩어리를 없애야 한다. 왼쪽 눈으로 본 데생과 오른쪽 눈으로 본 데생에서 잘 못 그려진 구도를 똑바로 응시해서 3차원에서 통용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서귀포시문화도시 사업으로 문화와 예술이 가득한 서귀포시의 르네상스 시대가 곧 시작될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는데, 다음 편에서는 이광준 센터장의 인터뷰를 통해서 궁금한 내용에 답변을 듣고자 한다. (한정희 예술 감독)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코너는?...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은 다양한 기관의 전시 · 기획자 · 작품 · 작가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지위를 향상하면서 미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취지에서 연재됩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미술이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읽고 작품을 감상하는 계기 마련과 미술을 통해서 개인의 행복한 일상을 마주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정희 디렉터가 총괄 기획한 전시로는 2019 제주국제평화센터 '평화의 꿈' 및 'DMZ 평화 생명의 땅', 2018 제주해짓골아트페어, ICC JEJU 아트&아시아 제주 2015 쇼케이스, 2015 서귀포예술의전당 전시실 개관기획전, 2015/2016 서귀포시교육발전기금마련전 등이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 기획, 언론 기고, 미술 연구조사, 미술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정희 디렉터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과 졸업

예문사 「학예사를 위한 소통하는 박물관」 공저

주경야독 문화재아카데미 ‘한국미술사’ 강사

설문대여성문화센터 운영위원

삼매봉도서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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