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5)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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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5)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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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현대미술관의 2020 지역네트워크교류전

오늘을 지나오면서 기억해야 할 일들이 과거가 되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포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낸다. 누군가는 투쟁하고 기록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 전체가 스며들면서 시대를 풍미하는 역사가 되어 갈 것이다.

음식은 조리 후 따뜻할 때 곧바로 먹어야 제맛이 나는가 하면, 발효를 거쳐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중요한 관건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제맛을 알기 위해, 역사에서 언제 누구를 평가하는 것이 제대로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시작하고 작품으로 완성한 ‘박정근’, ‘이경희’, ‘이지유’ 작가의 작품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대체로 다루기 어렵고, 외면하고 싶고,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관점이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이러한 것들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지나왔는가에 대해 자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경희 작가는 한국 전쟁 이후에 생겨난 미군기지와 이 주변 유흥지역의 관계성에서 살아가는 저마다의 ‘개인’을 바라보고 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당신이 내게 오기만 한다면 절대로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간절한 부탁이 담긴 메시지를 명함으로 만들고 전시실 벽면을 채우고 있으니, 당장 가서 꼭 정성을 맛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미군이 대한민국의 영토에 자리를 잡은 것은 우리의 역사에서 굳이 들춰내어 보고 싶지 않은 흉터와도 같을 것이다. 그런데 미군기지가 옮겨가면서 그 주변에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손님을 잃게 되는 현실적 문제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러한 지역민의 독특한 삶의 형태와 목소리를 풀어내고 있다.

이지유 작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재수의 난’을 모티브로 한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1901년 제주도 대정군에서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천주교인과 주민들이 충돌한 사건으로 이재수가 민란의 우두머리가 되어 난을 이끌었고, 정부군에 의하여 진압되었으며 이재수는 서울에서 처형당하였다. 이후 이재수의 죽음에 대한 억울함과 그 사연은 이재수의 동생 이순옥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지유 작가는 제주의 역사적 사건을 수면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예술을 통해 이재수의 존재를 명명하고 있다. 영화로 만들어진 ‘이재수의 난’의 한 장면을 가져오고, 기록에 의한 서술에 의존하여 이재수의 초상을 완성한 것이다.

변종필 제주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터전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칠 정도로 각별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를 만나 작별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나 고유의 자리를 되찾아 가는 특별한 장소와 사람들을 마주하는 유의미한 시간을 갖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는 창작 배경과 활동 영역이 서로 다른 작가들의 확장적 예술 교류를 지향하는 연례 기획으로 ‘지역 네트워크 교류전’인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을 마련했다. 예정된 일정에서 올해 7월까지 연장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으니 부디, 상처가 아물기 전에 제대로 확인하고 치료해야 하는 상황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사진=제주현대미술관의 2020지역네트워크교류전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 전시포스터
사진=제주현대미술관의 2020지역네트워크교류전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 전시포스터

그리고 4월이 지나가도 기억해야 할 ‘제주 4.3’을 주제로 작업한 박정근 작가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제주의 삶을 ‘이야기 이미지’로 정박시킨 박정근 작가

제주현대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이자 2020년도 첫 기획전시인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에 참여 작가인 박정근(충북 음성, 1978~ )의 작품은 ‘제주 4.3’을 주제로 한다.

이번 ‘제주 4.3’에 대한 작업은 작가에게 2018년도 4.3 70주년을 맞아 300명이 넘는 유족의 초상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로 참여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진을 잘 돌려 드리기 위하면서, 유족의 희생자에게 보내는 짧은 메시지도 담아서 찍게 되었고 유족들은 회한의 아픔이 묻어난 표정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유족들에게 밝은 표정을 찍을 수 있도록 유도하여 다양한 장면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진=박정근, <4.3 지금 여기>, 3채널 비디오, 8'50
사진=박정근, <4.3 지금 여기>, 3채널 비디오, 8'50", 2018

작가는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고서 ‘제주 4.3’을 공부하고 마을을 찾게 되면서 백여 명을 더 찍게 되었고 이렇게 모인 총 400명의 사진 중에서 150장의 사진을 모니터에 담았다. 이 영상 작품은 3개의 모니터가 시차를 두고 바뀌고 있어서 한 인물의 표정 변화와 뒤에 오는 또 다른 인물을 함께 보게 된다. 개인의 슬픔과 비극에 관련된 이야기이지만 한 가족과 마을이 동시에 4.3을 겪었던 당시의 상황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박정근은 마을을 방문하여 작업을 진행하면서, 제주 4.3 체험 세대에서 부부가 생존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특징을 발견했다.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리감의 간격이 좁혀질 무렵에 사진을 찍으면서, 부부에게 편안한 장소와 기억에 남을 만한 장소 등으로 삶의 흔적을 대표할 수 있는 배경을 따라갔다.

사진=박정근, <이상언의 아빠이승도 엄마한춘자>, 100cm×140cm, Pigment print, 2019
사진=박정근, <이상언의 아빠이승도 엄마한춘자>, 100cm×140cm, Pigment print, 2019

위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이상언의 아빠이승도 엄마한춘자>라는 작품명이 돋보인다. 작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시간을 오래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화의 마지막에는 자식들의 자랑과 가족의 안녕을 위하는 부부들의 공통된 마음을 읽으면서 작품들의 제목을 ‘누구의 아빠와 엄마로’로 정한 것이다.

작가는, 기존에 나와 있는 제주 4.3에 대한 책, 논문, 작품 등을 보았을 때 ‘장소’만이 주목받고, 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려고만 하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4.3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어르신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박정근은 카메라를 통해서 시각화된 정지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진작가이다.

그가 제주에서 작업한 결과물은 크게 ‘잠녀(해녀)’, ‘입도조’, ‘제주 4.3’의 주제를 갖게 되었다.

박정근 작가가 우연한 계기에 제주로의 이동을 하게 되었을 때, 그만의 시각을 발견하기 위한 외면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제주의 해녀가 앵글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온평리의 명자 삼촌이 “밥은 먹고 다녀?”라는 따뜻한 한마디에서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4년 동안의 사진들을 보니, “선배들이 잘 찍은 흑백사진이라면, 내 작업은 컬러사진이구나.”라는 생각에 그 작업들을 중단하게 되고, 명자 삼촌과 함께 구도와 관점에 변화를 주면서 2016년도에 발표한 <잠녀> 작업이 나왔다.

잠녀의 작업에서는 물숨·물옷·물질을 테마로 물숨결의 시리즈를 발표했다. 그의 사진은 회화적인 느낌으로 먼저 다가오고 대상을 클로즈업하거나 빛과 물결에 따라서 물체와 인물이 가진 불변의 고정화된 형태가 변형이 생긴 순간을 포착했다.

뒤이어 발표한 작품으로는 ‘입도조’이다. 제주의 문화 중 하나로 제주의 토착 성씨인 고씨·부씨·양씨를 제외하고 모두 다른 지역에서 건너온 성씨들이다. 그 후손들이 제주에서 최초로 정착한 선조를 입도조라 칭하는 것을 알게 된 작가가 자신만의 입도조 세대를 정리하여 그들을 찍은 것이다.

사진=박정근 작가
사진=박정근 작가

“사진은 묵혔을 때 더 좋은 사진으로 완성된다.”고 말하는 박정근은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면서 그 과정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 과정은 다큐멘터리와도 같은데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게 하고 어느 한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에게서 이야기보따리의 다양성을 발견하고, 더 많은 보물을 채굴하는 탐험가의 모습이 보인다. <한정희 아트 디렉터>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코너는?...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은 다양한 기관의 전시 · 기획자 · 작품 · 작가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지위를 향상하면서 미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취지에서 연재됩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미술이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읽고 작품을 감상하는 계기 마련과 미술을 통해서 개인의 행복한 일상을 마주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정희 디렉터가 총괄 기획한 전시로는 2019 제주국제평화센터 '평화의 꿈' 및 'DMZ 평화 생명의 땅', 2018 제주해짓골아트페어, ICC JEJU 아트&아시아 제주 2015 쇼케이스, 2015 서귀포예술의전당 전시실 개관기획전, 2015/2016 서귀포시교육발전기금마련전 등이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 기획, 언론 기고, 미술 연구조사, 미술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정희 디렉터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과 졸업

예문사 「학예사를 위한 소통하는 박물관」 공저

주경야독 문화재아카데미 ‘한국미술사’ 강사

설문대여성문화센터 운영위원

삼매봉도서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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