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민족자존의 마을길을 따라 조천진성 연북정(戀北亭)에 올라 민족자존의 마을길을 따라 조천진성 연북정(戀北亭)에 올라 민족자존의 고장 조천읍! 신촌리를 지나서 조천진성 연북정(戀北亭)에 이르는 데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하나가 이형상(李衡祥) 목사가 1702년 순력(巡歷)하였던 조천조점(朝天操點) 길, 즉 일주도로(속칭 한길= 신작로)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 올레 18코스로 대섬을 지나 바닷길과 마을안길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아래 사진은 Daum 지도로 조천읍 신촌리와 조천리 경계지점, 그리고 일주도로와 올레 18코스(점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조천관은 객사이고 연북정은 정자이다.’ 라는 주제로 지난해 10월 25일부터 6회에 나누어 연재하였 '궷물' 정호가 조천을 그리며 | 김정호 | 2020-01-17 11:18 교수 곽기수(敎授郭期壽)의 조천관 중창기(朝天舘重創記) 교수 곽기수(敎授郭期壽)의 조천관 중창기(朝天舘重創記) (1), 목사 李沃(이옥)은 1590년(선조 23) 조천관(朝天館)을 중창하고 조천진성을 넓히어 쌍벽루(雙碧樓)를 설치하였습니다.(2), 「조천관기(朝天舘記)」 또는 「조천관 중창기(朝天舘重創記)」는 이옥 목사가 1590년 조천관을 고쳐지은 사실을 敎授 곽기수(郭期壽)가 1591年(宣祖24) 濟州鄕校 敎授로 있을 당시 기록한 記文으로 같은 내용으로, 「조천관기(朝天舘記)」는 교수 곽기수가 자신의 「한벽당문집」에 남긴 기록이며, 「조천관 중창기」는 이원진 목사가 1653년 그의 「탐라지」에 수록하면서 ‘교수 곽기수의 중창기’라고 기록 '궷물' 정호가 조천을 그리며 | 김정호 | 2019-12-19 09:30 북쪽에 계신 임금을 그리워하던 연북정(戀北亭) 북쪽에 계신 임금을 그리워하던 연북정(戀北亭) (1) 「조천관 중창기」 1591년 교수(敎授) 곽기수(郭期壽)의 記文으로선조 23년(1590)에 이옥(李沃) 목사가 조천진· 조천관을 중창한 업적을 상세하게 기술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이후 조천관·연북정에 대한 모든 글의 바탕이 된 記文입니다.조천관 중창기 중에서 원문; 「城子則退築東北 上安譙樓 其名雙碧」 「성곽은 뒤로 물려 쌓고 동북쪽에 門樓를 세워 雙碧이라 하였다.」 라고 하였으며, ‘戀北’에 대하여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즉, 1590년 이옥 목사가 조천관(朝天舘)을 중창할 때에 “성곽을 동북쪽으로 넓히면서 위에 초루를 '궷물' 정호가 조천을 그리며 | 김정호 | 2019-11-15 09:15 조천관민(朝天舘民)의 기억 속에 사라진 조천관(朝天舘) 조천관민(朝天舘民)의 기억 속에 사라진 조천관(朝天舘) '궷물' 정호가 조천을 그리며조천관민(朝天舘民)의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조천관(朝天舘)을 이제 필자가 그 자태를 그려보려고 합니다. 조천관(朝天舘)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니까요.우선 교수 곽기수(敎授郭期壽)의 조천관 중창기(朝天舘重創記) 중 일부입니다.(전략) "건물들은 중앙에 官衙를 두었고 삼면에는 回廊을 만들었는데, 堂과 무기고, 부엌이 있다. 건축물들은 법도에 맞게 갖추어지고, 규모도 알맞아 높지도 낮지도 않으며 사치스럽지도 빈약하지도 않다. 웅장하고 아름다워 장로의 송(張老之頌)을 드릴만 하며, 처마는 새가 날개를 치켜 '궷물' 정호가 조천을 그리며 | 김정호 | 2019-11-01 09:10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