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 듣는 클래식] (8) 따듯한 온기가 전해지는 아름다운 곡 슈베르트의 즉흥곡 Op 90-3 D 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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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의 알고 듣는 클래식] (8) 따듯한 온기가 전해지는 아름다운 곡 슈베르트의 즉흥곡 Op 90-3 D 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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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3학년 시절 대학입시를 앞두고 밤새워 공부할 때 듣던 곡들 중에 슈베르트곡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처음엔 ‘밤과 꿈’ ‘악흥의 순간’ ’아베마리아’ 등 소품을 즐겨 듣기 시작하면서 슈베르트를 좋았했던 것 같다. 그 후 많은 날이 지나 그의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을 비롯해 피아노 곡 들을 들으면서 슈베르트의 음악 성향에 대해 깊이 알게 되었다.

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보통 인생보다 우여곡절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들이 가진 외골수적 성격이나 라이프 스타일은 차제하고라도 궁색한 살림살이는 항상 덤으로 따라 다녔다. 그 중의 으뜸을 치라면 슈베르트의 궁핍한 살림 또한 수위에 오를 것이 뻔하다. 31세라는 나이로 단명하기까지 그가 작곡한 가곡만 해도 690여 곡에 달하니 ‘가곡의 왕’이란 별명을 갖고 있지만 그의 생활은 궁색하기 그지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곡들은 하나같이 맑고 아름답다. 우리가 제목도 모르고 불렀지만 항상 허밍으로 부르는 대부분의 가곡들은 슈베르트 곡이 많다. 따라서 음악사적으로 볼때 슈베르트를 기점으로 독일가곡(Lied)이 독자적인 쟝르로 자리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바흐, 모짜르트, 베토벤의 뒤를 잇는 작곡가로 손꼽는 슈베르트도 살아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서울서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직해서 받은 첫 달 월급으로 샀던 것은 인켈 오디오였다. 그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커녕 하고 전축 조차 귀했던 시절, 음악 감상실이나 음악 다방에 가야만 좋은 질의 클래식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새로 구입한 턴 테이블에 그라모폰 LP판을 올려 놓고 바늘을 갖다 댈 때의 설레임과 떨림의 추억이 있는 곡이 바로 슈베르트의 즉흥곡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와서 닿는 곡이다. 그의 8곡의즉흥곡(Impromptus)은 그가 죽기 1년 전에 작곡된 피아노 독주곡으로 4곡씩을 묶어서 작품번호를 달리했다. 슈베르트의 곡은 오스트리아의 음악문헌학자 오토 에리히 도이치가 정리해서 출판했기 때문에 작품번호를 의미하는 Op와 함께 도이치의 이니셜 ‘D’자가 붙는데 처음 4곡은 D899이고 후에 4곡은 D935다. 각각 개성이 있지만 8곡 중 어느 곡 하나도 절대 튀지 않는 즉흥곡은 내면에 깔린 따스한 온기 때문인지 겨울에 주로 듣곤 했었다. 특히 D899의 4곡 중 3번째에 해당하는 안단테(Andante)는 내림 사(G)장조로 들을수록 곡 안에 빠져드는 매력이 있는 곡이다.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슈베르트가 희망을 잃지 않고 꾿꾿이 지냈던 시간은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모임이 있었던 2,3년간 이었다. 슈베르티아데는 ‘슈베르트의 ‘밤’이란 뜻으로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 후원도 하고 나중에는 화가, 작가, 배우, 그리고 법률가 등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여 슈베르트의 음악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 모임은 시와 문학, 그리고 미술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토론하는 자리로 친구들이 그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시기가 슈베르트에게는 황금같은 시기로 부족한 생활 가운데서도 활기찬 나날을 보냈던 시기였을 것이다. 시인은 시를 읊고 문학가는 독일문학을 소개하다보면 이를 바탕으로 좋은 곡들의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

낭만주의의 대들보 역할을 한 슈베르트는 1827년 그의 죽음을 예견했는지 불멸의 대작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작곡하고 역시 동일 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베에토벤과의 만남을 갖는데 이때가 바로 베토벤 사망 일주일 전이었다. 31년의 짧은 세월동안 수많은 곡들을 작곡하면서 변변한 악기 하나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했던 슈베르트는 이전의 고전주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환상곡, 즉흥곡 21곡의 피아노소나타 등 많은 소품들을 남겼고 더러는 미완성의 상태에 있는 작품들도 있다. 2 악장으로 끝난 교향곡 8번, 미완성교향곡도 그 중의 하나로 비록 미완성 이지만 완성된 어느 곡보다도 완성도가 높은 곡이다.

커피 한잔 마주하고 창가에 앉아 창문으로 비치는 초봄의 햇살을 받으며 듣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햇살 만큼이나 따사롭다. 특히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의 세번째 곡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언젠가 꼭 들었음직한 친근함이 느껴지는 곡이다. <정은실/ 칼럼니스트>

*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와 제휴를 맺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뉴욕일보>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Op 90-3 D 899
슈베르트의 즉흥곡 Op 90-3 D 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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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컬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현재: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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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익행 2024-03-06 12:15:08 | 106.***.***.94
클래식을 잊고살았는데
정은실 작가님을 통해서 젊은날에 한때는 저도 클레식에 잠시 빠졌는데 선곡이 좋아서 마음에 봄을 느낌니다

오름지기 2024-03-05 10:38:34 | 223.***.***.12
오늘 비가 온다고 하네요.
클래식 듣기에 좋은 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