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제주특별자치도가 책임경영을 명분으로 해 제주4.3평화재단의 이사장을 도지사가 최종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상근 이사장' 체제로 전환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은 조례 개정 강행에 반발하며 사직서를 제출하는 한편, 이번 조례 개정에 대해 정면 비판하고 나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제주도내 시민사회단체들도 일제히 도정을 비판하며 조례 개정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2일 제주도가 입법예고한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안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오영훈 지사는 독단적 4.3재단 운영 조례 개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제주도는 4·3평화재단과 4·3 관련 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4·3평화재단 이사장과 이사 임명권을 제주도지사가 갖도록 하는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면서 "4·3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조례 개정 추진을 멈춰달라며 고희범 이사장이 직을 던졌음에도 제주도는 이러한 호소조차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제주도는 평화재단의 투명한 기관 운영을 위해 조례 개정 등을 통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면서 "제주도가 입법예고한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안은 책임경영을 위해 비상근 이사장을 상근 이사장으로 전환하고 그 임명권을 도지사가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선임직 이사 또한 도지사가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제주도가 내세우고 있는 책임경영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조례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장과 선임직 이사의 임명권 문제이다"며서 "이는 제주4·3에 대한 국가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4·3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평화재단에 제주도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평화재단은 오랜 세월 제주4·3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온 제주도민 모두의 것이다. 제주4·3 역시 특정 정파나 특정 정치인의 소유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정이 이런데도 오영훈 지사는 평화재단 이사회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조례 개정을 강행하고 있다"면서 "백번 양보해서 제주도의 주장처럼 조례 개정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조직 운영과 관련한 중대한 사항에 대해서는 평화재단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그것이 제주도가 말하는 기관 운영의 민주성이자, 투명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라며 "하지만 제주도는 이러한 절차를 철저히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조례 개정안을 밀어부치고 있는데, 이는 행정의 독단이며 오만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주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외치는 오영훈 지사가 이렇게 독단적으로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한 후, "일부 언론에 의하면 이미 차기 이사장 내정자에 대한 추측성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이는 결국 재단을 제주도정이 사유화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4·3 진상규명운동은 국가나 제주도정이 먼저가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고,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해 온 제주도민 모두의 역사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영훈 지사는 제주4·3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조례 개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3만 4·3영령과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 제주도민들을 배신하지 않는 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 고희범 이사장 '사표', "이사장 도지사 임명, 책임경영과 뭔 상관인가?"

앞서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2일 조례 개정 강행에 반발하며 사직서를 제출하고, 제주도정을 정면 비판했다.

고 이사장은 이날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3의 정치화가 명약관화하고 4.3의 정신을 뿌리부터 뒤흔들 조례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그동안 재단은 설립 초기부터 이사장이 비상임으로 상근을 하며 재단을 대표하고 경영 책임을 맡아왔다"며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이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4.3영령과 유족들을 위로하고 4.3교훈의 후대전승, 4.3의 남은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임 이사장이 아니어서 책임경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도의회 행정사무감사, 감사위원회 감사, 공기업 경영평가 등을 충실히 임해왔고,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여 개선조치를 취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사장이 비상임이어서 책임경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헌신적으로 무보수로 일해온 역대 이사장의 노고를 근거없이 폄하하는 것일 뿐"이라며 "이사장과 이사를 도지사가 임명하는 것이 책임경영 강화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는 "도의회의 중재안까지 무시하면서 조례 개정을 강행하려는 태도를 보면서 독단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4.3의 정치화가 명약관화하고 4.3의 정신을 뿌리부터 뒤흔들 조례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 "도지사의 재단 장악 시도는 그동안 특별법 제정과 전면 재개정에 이르기까지 힘을 모아주신 4.3유족과 제주도민 등을 배신하는 일"이라며 "4.3은 제주도지사가 독점할 수 없는 제주도민의 피의 역사"라고 강조하며 조례 개정 중단을 촉구했다.

◇ 제주도 "'도지사 재단 장악시도' 입장은 매우 유감" 

이처럼 시민사회 반발이 확사되자 제주특별자치도가 2일 별도 입장을 내며 진화에 나섰다.

제주도는 2일 조례 개정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고희범 재단 이사장의 기자회견과 관련해 별도 입장문을 내고 "이번 조례안은 재단의 책임경영 강화와 미래지향적인 역할 확대를 위한 것"이라며 고 이사장의 입장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제주도는 "고희범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조례 개정안과 관련해 ‘도지사의 재단 장악 시도’이며, ‘4․3은 도지사가 독점할 수 없는 제주도민의 피의 역사’라고 주장했다"면서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의 4.3의 해결 과정은 3만여 명에 달하는 4․3 영령들과 눈물로 70여 년을 지내온 유족, 70만 도민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성취물이다"면서 "이제 그 해결의 길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평화재단도 이러한 성격에 맞게 조직이 재편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3의 정의롭고 올바른 역사는 계속될 것이고, 그 중심에 4․3평화재단이 있을 것"이라며 "제주도정은 4․3평화재단이 책임경영 체제를 통해 도민과 유족들에게 신뢰받는 세계적인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헤드라인제주>
 

홍창빈.윤철수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