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재판에 희생 '4.3수형인', "이념적 누명,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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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재판에 희생 '4.3수형인', "이념적 누명,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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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수형인 3800여명..."재판절차없이 불법감금 희생"
"재심청구 보다는 명예회복 제주4.3특별법 개정 필요"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 당시 영문도 모르고 군부대나 경찰관서에 끌려간 뒤 투옥됐던 수많은 이들.

4.3희생자에서도 '수형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이념적 누명'으로 정상적인 재판절차 한번 없이 총살되거나 형을 언도 받고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수많은 이들은 아직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다.

4.3수형인은 1947년 3월1일에서부터 1949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군사재판에 의한 수형인 2530명, 일반재판에 의한 수형인 1306명 등 약 38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행방불명되거나 기록이 불분명한 피해자들을 감안하면 실제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희생당한 비극적 사건인 제주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은 여전히 '수형인'이라는 낙인이 찍혀진 상태로 남아있다.

27일, 제주에서는 이념적 누명에 의해 '4.3수형인'으로 남아있는 이들에 대한 대한 명예회복 조치 방안에 대한 공식적 논의가 시작돼 주목됐다.

27일 열린 '4.3수형인의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 방안' 토론회.<헤드라인제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정문현)는 이날 오후 3시 제주시 하니관광호텔 별관 연회장에서 '4.3수형인의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 방안'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4.3수형인'에 대한 당시의 재판이 법적절차를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불법 감금수준으로 행해졌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며, 정부 차원의 조속한 명예회복 조치를 강력히 요구했다.

◆ "정부가 불법적으로 감금했던 것...법적 명예회복 시급"

정문현 4.3유족회장은 인사말에서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된 후 4.3희생자 및 유족 신고를 통한 명예회복,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 채택, 대통령 사과, 평화공원 조성, 국가추념일 지정 등 수많은 사업이 추진돼 왔으나, 4.3당시 불법재판 감금자라고 할 수 있는 수형인에 대한 추가 진상규명과 법적 명예회복은 그리 진전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2003년 발표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54년까지 4.3사건과 관련하여 사법부의 재판을 받고 형을 언도받은 사람들은 수천 명에 달한다"며 "이들은 당시 전국 각지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상당수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불순분자라는 이유로 총살되거나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27일 열린 '4.3수형인의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 방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정문현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헤드라인제주>

정 회장은 "특히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군법회의를 통해 형을 언도 받은 2530명은 그 절차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며 "여러 증언을 들어보면, 당시 재판을 받지 않고 수감됐거나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형식적으로 치러진 재판이라고 한다. 즉, 정부가 불법적으로 감금을 했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동안 정부와 4.3단체 차원에서 증언조사 등의 사실규명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 왔지만 민간인 대상 군사재판 재소자인 경우 4.3특별법에 따라 희생자와 유족으로 신고는 했으나, 완전한 법적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못했다"며 "현재 4.3특별법에는 불법 재판 감금자인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 조항이 전혀 규정되지 않아 반드시 이에 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문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수형인이란 낙인이 찍혀진 그들은 4.3당시 경찰서나 군부대, 주정공장 수용소 등에서 불법 감금됐다가 낯선 다른 지방의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됐다"며 이들에 대한 조속한 명예회복 조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군사재판이란 형식을 통해 수형인이 된 희생자들은 기소장이나 판결문 등 재판절차를 거친 어떤 자료도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다만 현재 수형인 명부에 수형인으로만 등재되어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혼란했던 당시 정황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과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 재판의 기록이 없다는 것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지 간에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수형인이란 표현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오늘 토론회가 4.3수형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4.3해결의 주요한 분수령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다"고 말했다.

◆"군법회의 부존재...'수형인'보다 '불법감금' 표현이 타당"

이어진 박재승 제주4.3중앙위원회 소위원장은 '국가란 무엇인가'란 주제의 기조강연에서 4.3수형인에 대한 당시 재판은 군법회의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진 '불법 감금'이었다면서 당시 실질적인 '4.3 군법회의' 자체가 불법적이었음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2005년 4.3중앙위 전체회의에 수형인 606명의 희생자 결정 건이 상정됐을 당시 상황을 소개하며, "정부가 소위 4.3 군법회의를 받았다고 정부가 주장하는 사람 30명에 대한 조사결과를 면밀히 검토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군경의 취조를 받았지만 재판을 받은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며 재판절차도 없이 처분이 이뤄진 수형인이 대다수일 것이란 추정을 내놓았다.

27일 열린 '4.3수형인의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 방안' 토론회에서 박재승 4.3 중앙위원회 소위원장이 기조강연을 하고있다.<헤드라인제주>

그는 "군법회의를 열었다는 9연대 혹은 2연대 지휘부에 있었던 사람들을 4.3중앙위 전문위원(양조훈, 김종민)들이 직접 만나 진술을 녹취한 결과에서도, 그들은 군법회의는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했고, 국방부도 자료가 없어서 모른다는 것이었다"며 "취조한 경찰이나 호송했던 경찰들의 증언도 마찬가지로, 재판은 없었고, 형무소에 간 뒤에 형량과 죄명을 알려줬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던 6.25때 옥문이 열려서 나올 수 있었던 한 수형인은 1962년 잔여형 집행 문제로 체포되자 이의신청을 했는데, 심리결과 재판을 받았다는 자료가 없어 형집행 취소 결정을 받아낸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또 박00라는 또다른 수형인의 경우 1948년 12월9일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는데, 군법회의는 12월13일 열렸던 것으로 날짜가 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즉, 군법회의를 받지 않고 형무소에 먼저 수감돼 있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해 작성된 4.3진상조사보고서에서는 4.3 군법회의라는 것은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볼 자료가 없었다. 따라서 '수형인'이라는 말 자체도 부적당하다. 그리고 형무소에 수감한 것은 '불법 감금'이라고 못을 박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3진상조사보고서에서 '수형인'을 '불법 감금'이라고 적시한 것은 당연하고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며 "엄밀히 말하면 군법회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불법적인 군법회의에 의해 작성된 이른바 수형인명부라는 것이 여전히 '국가 공문서'란 이름으로 존재하고, 이를 빌미로 그에 해당하는 관련자나 그 유족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면 이는 당연히 시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시정조치는 국가가 앞장서서 당연히 해줘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안타깝고 부끄럽다"며 "정부는 재판 절차 없이 죽음을 당하고, 60여년동안 이념적 누명을 쓰고 있는 이른바 4.3 수형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도 없이 그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면, 지금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며 "본인에게, 그리고 그 가족에게 죄송하지 않은가. 무슨 말로 사죄해야 할지 막막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 "'재심청구' 보다는 4.3특별법 개정 통해 일괄 명예회복 조치 필요"

이어 문성윤 변호사는 '제주4.3특별법 개정을 통한 4.3수형인의 명예회복 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현행 4.3특별법에는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 방안 등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아 그 부분에 대한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변호사는 "4.3과 관련해 군사재판이나 일반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3800여명의 수형인들과 관련된 기소장이나 판결문 등 재판 절차를 거쳤다는 자료도 발견되지 않고 있고, 다만 현재 수형인명부에 수형인으로만 등재되어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27일 열린 '4.3수형인의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 방안' 토론회에서 문성윤 변호사가 주제발표를 하고있다.<헤드라인제주>

그는 "수형인들은 4.3특별법에 따라 희생자로 결정이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수형인명부에 등재되어 있는 불합리한 사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이것은 국가기관의 공문서에 계속하여 수형인으로 남게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문 변호사는 "따라서 그러한 문제를 어떠한 형식으로 풀어야 될지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며 "생활지원금이나 의료지원금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복잡한 법률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수형인 명예회복 조치 규정이 신설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당시 억울하게 재판 아닌 재판으로, 그것도 재판의 형식조차 갖추지 않은 그 자체로 무효인 재판으로 수형인이 되고 현재까지 수형인명부에 등재된 희생자들에 대해서 국가는 명예회복 방안을 당연히 강구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명예회복 방안과 관련해 '재심청구'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전했다.

문 변호사는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에는 특별재심이 규정되어 있지만 4.3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재판기록이나 판결문이 남아 있지 않아 그와 같은 특별재심의 형식으로 명예회복을 하는 것은 사실상 곤란해 보인다"며 "1954년 제정된 형사소송법의 적용시점 등을 감안하여 보더라도 지금의 법 체계상으로 법 개정 없이 현재의 형사소송법 제420조에 따른 재심은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 논리적으로도 재판의 형식이나 외관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여서 수형인들에게 재심을 청구하라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시일이 오래된 문제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재심을 신청한 사람과 신청하지 않은 사람 사이의 형평성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고, 특히 시일의 경과로 인한 입증의 문제, 입증이 하더라도 과연 어느 정도의 입증을 해야 되는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문 변호사는 "따라서 희생자로 결정된 수형인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명예회복 방안을 별도로 검토해야 될 시점이 됐고, 그와 더불어 여전히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수형인명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될 시점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예회복 방안으로 재심보다는 희생자로 결정된 수형인에 대해 일괄해 명예회복을 할 수 있도록 제주4.3특별법에 처분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별법을 통한 명예회복 조치방안과 관련해 그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특별법 자체에 문제의 수형인명부의 폐기를 선언하는 방법과 특별법에 따라 희생자로 결정이 된 수형인에 대해 4.3위원회가 그에 따른 공고, 다시 말하면, 희생자로 결정되었다는 사실과 명예회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하고 관련기관에 통보를 해 수형인명부에 별첨으로 그러한 취지를 기재해 보관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조훈 전 제주특별자치도 정무부지사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토론에서는 고호성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박찬식 4.3평화재단 진상조사단장, 이중흥 4.3행방불명인 소송 추진 대표 유족이 참여한 가운데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헤드라인제주>

27일 열린 '4.3수형인의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 방안' 토론회.<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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