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추경' 가닥 예산파국 새국면...남은 쟁점은?
상태바
'조기 추경' 가닥 예산파국 새국면...남은 쟁점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희룡 지사 의회 '조기 추경' 전격 수용 배경과 전망
'재의요구' 방침서 급선회 이유는?...재편성 '전액부활, 선별'?
14일 주간정책회의를 주재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헤드라인제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14일 사상 초유의 예산삭감 사태의 수습방안으로 '조기 추경'을 전격 수용한 것은 '여론의 압박'에 의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임한 원 지사는 이날 주간정책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모두 발언부분을 언론에 공개하며, 의회와 사전협의를 거쳐 추경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강경식 의원(무소속)과 위성곤 의원(새정치민주연합), 구성지 의장이 잇따라 추경안 제출을 촉구한 것에 대한 수용입장이다.

원 지사는 "예산 삭감으로 인해 민생 피해에 대한 도민 우려가 심각하다. 민생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추경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1636억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삭감사태가 빚어진 후, 줄곧 "추경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 "법령위반된 예산에 대한 재의요구를 검토하고 있다"는 등 '추경 불가론' 입장을 고수해 온 점을 감안하면 전격적인 선회이다.

예산부서에서는 '조기 추경'을 통해 '재의요구' 고민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음에도, 마치 '선(先) 재의요구, 후(後) 추경논의' 수순이 정답인 것처럼 어필해 왔다.

그러나 이날 원 지사의 입장을 살펴보면 '재의요구'와 '조기 추경'은 일의 선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추경을 통해서 재의요구 고민을 떼어낼 수 있는 것임이 재차 확인됐다.

원 지사도 "삭감예산중 법령위배 등으로 재의요구 요건에 해당하는 사안을 일단 의무적으로 재의요구가 불가피하다"면서도, "그러나 추경이 통과되면 재의 요건은 자동 소멸되기 때문에 갈등요인이 해소된다"고 밝혔다.

추경을 통해 삭감된 해당 예산이 부활될 경우 재의요구의 원인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는 설명이다.

이에따라 앞으로 행정자치부의 '재의요구 권고'가 있어 의회에 재의요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는 형식적인 절차로 가져나가고 도정과 의회가 추경 논의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확보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재의요구가 먼저냐, 추경이 먼저냐의 논란은 일단 정리된 셈이다.

이번 추경 수용 입장선회는 무엇보다도 예산파국을 둘러싼 논란이 자칫 의회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여론의 반전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대규모 삭감사태 이후 제주도정에서는 '재의요구'를 명분으로 해 '추경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지나치게 쉽게 해왔다. 명분은 법령 및 조례 등의 근거를 갖고 편성한 법정필수경비의 삭감, 국비 매칭사업의 삭감 등을 들었으나, 의회 압박용이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묻지마 삭감'을 한 의회에 대한 대대적인 여론공세를 통해 이번 기회에 '백기투항'을 일구겠다는 계산도 엿보였다.

하지만 '재의요구'의 실익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조기추경 필요성 여론이 확산되고, 추경편성을 통해 재의요구 원인소멸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결국 도정은 추경 수용으로 전격 선회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추경 제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은 지난 9일 도의회 임시회에서 구성지 의장의 제안이 있을때에도 언급되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제주도 입장은 '삭감된 예산 1636억원을 조건없이 전액 부활시켜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었다.

'조건없는 부활'이란 의미가 1636억원 전액을 최초 편성했던 항목 그대로 세출예산으로 재편성하는 것을 용인해 달라는 뜻인지, 아니면 일부 항목의 변경 조정을 포함한다는 것인지는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도청 내부에서는 이미 전자의 경우로 해석하고 있었다.

즉, 최초 제주도정이 편성했던 예산을 전액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최악의 파국사태를 맞은 만큼 이번 예산안은 전액 원안대로 통과시키고, 이후 예산제도 개혁논의를 하자는 취지다.

이는 도민들에게 더 이상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우회적으로 제시되기는 했으나, 의회 심의 의결권을 전면 무시하는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각도 상당부분 표출됐다.

'전액 부활'이란 조건이 고집될 경우 자칫 추경협의가 시작되면 제주도정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점 때문에 불과 5일만에 기존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수정 입장이 나왔다.

원 지사는 "추경은 갈등을 마무리하는 추경이 되어야 하며, 이것이 도민에 대한 예의"라며 "이를 위해 의회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삭감예산중 되살릴 항목을 선정하면 이를 편성해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추경 관련 예산 항목들은 새로운 예산이 아니라 이미 의회가 두 차례나 심의를 했던 예산이다. 나름대로 생각을 갖고 삭감했던 예산이라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도에서 새로운 예산처럼 제출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과에 비춰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원 지사는 그러면서 "의회가 삭감했던 예산 중 되살릴 예산 항목을 지정해주시면 곧바로 추경예산안을 편성해 제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항목지정 후 추경편성 소요기간은 하루이틀이면 된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의회에서 편성항목을 지정해주면 당장이라도 추경안을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도정과 의회가 추경편성을 위한 협의절차이다.

최대 관건은 원 지사가 제안한 의회의 '편성항목 지정'이다. 1636억원 중 선별적으로 법정필수경비 및 국비매칭, 그리고 민생예산을 선별해 편성토록 할지, 아니면 '통'으로 1636억원을 전액 부활시키는 방향으로 할지가 최대 쟁점이다.

또 1636억원 삭감 예산의 재편성 과정에서 선별 편성으로 잔여 예산이 있다면 이를 다시 '내부 유보금'으로 할 것인지, 예비비로 돌릴 것인지, 혹 의회에서 주장하는 주민숙원사업을 선별적으로 수용할 것인지도 논의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도정과 의회가 지난 예산파국에 대해 어떤 '자기 반성'을 내놓을지, 또 앞으로 예산제도 개혁에 대한 합의까지 이끌어낼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일단 공을 넘겨받은 의회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묻지마 계수조정'으로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의회가 추경안 편성항목 지정 제안에 대해 어떻게 수용할지가 주목된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