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수난시대'... 애월읍 백골 그냥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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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수난시대'... 애월읍 백골 그냥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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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애월읍 백골 추가발견...문화재 발굴 여부 '불투명'
문화재 발견되도 '모르는척' 빈번..."현실적 어려움 많아"

'문화재 발굴'이 이야깃거리로 오르면 많은 이들이 고고학자가 주인공인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세계 각국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모험을 통해 비밀을 밝혀내는 멋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고고학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현실적 어려움에 의해 일부만 발굴되는가 하면, 토목공사 중 우연히 문화재가 발견되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시 애월읍에도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매장 문화재가 발견됐지만, 이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발굴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매장문화재 발굴현장의 모습. <헤드라인제주>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에서 발견된 백골시신. <헤드라인제주>
# 애월읍 금성리 매장문화재..."고고학적 가치 높다"

지난 5월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하수관거공사 현장에서 백골시신과 매장문화재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백골시신은 10세 가량으로 추정되는 아이의 시신을 비롯해 총 4구가 발견됐고, 고려청자와 청자접시, 청동사발, 숟가락, 분청사기, 조선초기 백자 등이 함께 출토됐다.

이에 제주시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 9월 25일부터 10월 24일까지 약 한달간 해당 공사지역을 비롯한 총 100㎡ 지역에 대해 발굴조사를 벌였다.

발굴 초기에는 백골시신이 너무나 완벽하게 남아있어 제주4.3당시 매장된 유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조사결과 15-17세기 가량의 묘역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토광묘는 총 12기로 토광내에서 온전한 인골 11구가 확인됐고, 하수관거 공사 중 훼손된 인골 4구, 화장묘로 추정되는 유구 2기가 확인됐다.

특히 토광묘나 석곽묘에 안치된 인골들은 모래토양에 매장된 까닭에 보존에 적합환 환경조건이 갖춰짐으로써 매우 양호한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부장품이 확인된 묘는 총 4기로 분청사기접시, 분청사기인화승엽문접시, 백자대접, 청동숟가락 그리고 유리구슬 등이 발굴됐다.

부장된 도자기류의 사용시기는 고려말부터 조선초로, 대략 14세기말에서 16세기초 사이쯤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결과를 종합해볼때 해당 지역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해당하는 시기의 집단묘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사이에 3-4대에 걸쳐 조성된 가족묘역일 가능성도 있다.

이번 조사결과 보존상태가 양호한 인골과 다양하고 완전한 부장유물들, 사구에 조성된 집단묘역과 매장방식, 앞으로 얻어질 피장자의 인골 분석자료 등을 고고학 자료로 활용할 경우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고려말-조선초 분묘연구에 높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애월읍 곽지리서 유사한 유골 또다시 발견...발굴조사 가능할까?

이같은 상황에 최근 매장문화재 출토지역 인근에 위치한 애월읍 곽지초등학교 옆에서 또다시 백골시신이 발견됐다. 이번에도 하수관거 정비공사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다.

경찰조사 결과, 백골이 지면에서 40cm 깊이의 모래층에 묻힌 채 완전히 부패됐다는 점, 금성리 유적에서 발견된 유골 상태와 상당히 유사한 점 등을 놓고 볼 때 이 지역 역시 금성리 유적과 연결된 유적지역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성리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담당했던 제주고고학연구소의 강창화 박사는 "금성리 유적지의 경우 현재까지 발굴조사 결과를 놓고 볼 때 약 1만6000㎡ 규모의 거대한 묘역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이번에 발견된 유골 역시 해당 범위에 포함됨에 따라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 대한 문화재 발굴조사가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해당지역에서 유골 외에 다른 유물 등은 발견되지 않았고, 지난 금성리때 같이 대규모의 백골시신이 발견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강 박사는 "사실 금성리 유적도 대규모 발굴조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주변에 거주지역이 있어 발굴조사가 불가능하고, 그렇지 않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사유지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비용 등의 문제로 발굴조사를 벌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앞으로 이 유적을 어떻게 보전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가늠하기 어렵다"며 "주거지가 철거된다면 추가 발굴조사가 가능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밑도 끝도 없이 남의 집을 파기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5월 백골시신과 매장문화재가 잇따라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하수관거공사현장의 모습. <헤드라인제주>
# '발굴조사' 달갑지 않은 토지주...유물 발견되도 덮어버리기 일쑤

문화재 발굴조사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금성리와 곽지리의 경우 백골시신이 발견되면서 경찰신고가 이뤄져 조사가 가능했지만 이런 과정없이 유물이 발견되도 그대로 덮어버리고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에서 포클레인을 운영하는 A씨(45)는 <헤드라인제주>와의 전화통화에서 "솔직히 이런말을 하면 안되겠지만 공사를 위해 땅을 파던 중 옛 유물 같은 것이 발견되도 그냥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만약 공사현장에서 문화재 발굴조사가 진행될 경우 해당 조사기간 중에는 공사를 못하기 때문에 공사관계자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게되는 것"이라며 "특히 해당지역이 보호구역으로 결정되면 우리도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인데다가 토지주 역시 그런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 발굴조사를 피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A씨는 "물론 우리라고 문화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생계를 걱정해야 할 우리 처지에서 그런 부분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

옛 조상의 생활상을 알려주고, 역사의 정확한 고증에 큰 도움을 주는 문화재들.

그러나, 현실적인 난관으로 인해 문화재 발굴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역사에 대한 의문점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목소리가 인다. <헤드라인제주>

<김두영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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