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33) 쥐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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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33) 쥐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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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마다 찾아오는 고마운 언니와 그의 딸내미를 보는 즐거움에 가끔은 가슴 끝이 아픈 것도 묻어질 때가 있다. 찾아와서는 수다도 떨어주고, 집안을 뒤적거리며 청소며 빨래거리들을 찾아내 말끔하게 털어주고 널어주고.......
 
"안녕히 계세요."하고 생글거리며 집을 나서는 아이를 보면 내가 가진 것이 없어,
"그래. 오늘도 고마워 수고 많이 했다." 겨우 이 한마디만을 내뱉고 있는 내 맘이 아플 때가 많다.
 
그렇게 몇 년인지.......
오늘도 가만가만 속삭이듯 다가와서는 방글 웃으며 내손에 따듯한 커피 한 잔을 쥐어주고 돌아간 봄바람 같은 아이.
 
"숙아. 늘 예쁜 미소로 이모 찾아와줘서 고맙다."
  
그렇게 아이와 엄마가 떠나고 창밖을 바라보자 우울한 하늘빛이 맑던 내 심장을 물들이려는 듯 무겁다.
 
개강을 하고 강의실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게다가 날은 왜 그리 춥고 궂은지.......

그런 날을 보내며 다니다 문득 유리창에 붙은 대자보를 보게 됐다. 제주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외국인학생이 큰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비용이 너무 많아 감당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라는 사정과 함께 모금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자보를 보면서 "몸은 왜 아프데?"
하는 속상함과 함께 뒤적뒤적 지갑을 뒤져보고 있는 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대자보 앞에서 물러나 휠체어를 휙, 돌려 건물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 때, 내 주머니에는 몇 천 원, 그리고 나라에서 주는 생활비통장에는 몇 만원이 남아 생활비가 들어오는 날까지 그 몇 만원으로 버텨야 하는 빠듯한 처지.
 
'고양이가 쥐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궁지에 몰린 쥐 주제에 고양이를 생각하는구나.'
 
내 처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왜 그렇게 속이 상하고 눈물이 나던지.......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처지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꼭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야무진 포부를 가지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순간순간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이 좌절감은 그런 꿈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게 하는 내 처지가 서럽게 해서 그런 날은 혼자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제 설움에 겨워 대성통곡을 하게 된다.
 
세상을 살면서 나는 누군가의 손길, 도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받으며 사는 빚을 나는 언제나 갚으며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며 살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때마다 점점 마음은 무거워지고 주머니는 채워질 줄을 모르고 가벼워만 간다.
 
그래도 주머니에 담기는 가벼움에 서럽지 않고, 가슴에 담을 수 있는 따뜻한 온기로라도 누군가에게 쥐꼬리만큼 이나마 나눌 수 있는 것이 하나쯤 있는 날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헤드라인제주>

강윤미씨 그는...
 
   
▲ 강윤미 객원필진.<헤드라인제주>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하지만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훈훈하게 해 줍니다.

그 의 나이, 벌써 마흔을 훌쩍 넘었습니다. 늦깎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강윤미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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