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옥의 사는 이야기] "오빠 덕에 촌년 출세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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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옥의 사는 이야기] "오빠 덕에 촌년 출세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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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오세요. 형님! 형수님~!"

인천공항에서 남편 후배의 배웅을 받고 신혼여행지인 파리로 배낭여행을 출발했다.

남편과는 달리 처음으로 외국을 나가보는 나에게는 가슴이 벅차고 너무나 설렌다. 한국에서 프랑스까지 비행시간은 12시간.

남편은 외국으로 혼자서 배낭여행을 많이 다녀봐서인지 힘든 나와 달리 좁은 비행기 안이 너무나 익숙해 보였다.

▲ 파리에서 첫 아침을 맞이하고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바로 에펠탑이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보여지는 파리 전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처음 비행기에 탑승할 때 단정한 사람들과 깨끗한 공간은 없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비행기 안은 여기저기 쓰레기로 더러워져가고 사람들은 칫솔을 들고 다니며 양치하고 맨발로 비행기 안을 걸어 다니며 다리 운동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좁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 비행기 안을 거실 삼아 운동을 했다.

저녁 18시30분.
드디어 파리에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가방을 찾아 4일 동안 묵을 호텔로 출발했다. 우리는 공항에서 리무진버스를 타고가기로 결정하고 버스를 탔다. 나는 엄마뱃속에서 갓 세상에 나온 아기처럼 버스 창문에 매달려 가는 1시간 동안 내내 “멋있다”라는 말을 하며 거리 구경을 했다.

▲ 셋째날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뒷배경에 보이는 일명 밀로의 비너스는 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 중 하나라고 한다.
우린 호텔에서 제일 가까운 곳 파리 시내 북서부에 있는 개선문에서 내렸다.

파리의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저녁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참으로 신기했다. 샹젤리제거리를 손을 꼭 잡고 호텔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샹젤리제거리는 거의 대부분 레스토랑으로 이루어져 있고, 고급 주택들, 책에서만 봤던 명품점들이 많았다. 그리고 거리에서 사람들과 스칠 때마다 각기 다른 향수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역시 프랑스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난 뒤 프랑스를 구석구석 구경하기로 했다.

먼저 찾아간 곳은 호텔에서 걸어 20분 걸리는 에펠탑에 갔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줄은 4군데에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에펠탑은 높이 301m에 총무게는 9,700톤으로 아주 거대 했으며 철기둥을 잇는 리벳을 250만 개나 사용했다고 한다.

에펠탑은 전망대마다 이용요금이 달랐고 계단을 이용하면 가격이 싸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두 배에 이용요금을 내야 했다. 우린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끝까지 올라갔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올라가는데 좀 힘들었지만 도착하는 순간 우리 뿐 아니라 주변에 같이 올라온 사람들까지 “와~”하며 탄성을 질렀다. 프랑스를 그림 속에 옮긴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이루 말 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우리도 옆에 있는 외국인에 도움을 받아 사크레 쾨르 사원을 배경으로 첫 번째 커플 사진을 찍었다. 한 시간에 관람이 끝나고 에펠탑에서 30분을 걷다보니 개선문이 나왔다. 야간에 볼 때보다 낮에 보니 많이 색달랐다. 우린 다시 손을 잡고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호텔로 향했다.

▲ 신혼여행지로 떠난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캔버스에 남겼다.
셋째날도 우리는 일찍 일어나 관광을 시작했다. 어제 너무 걸어 다녀서 다리가 아파 이번에는 지하철을 이용해 루브르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지하철은 버튼방식, 손잡이 돌리기 방식, 자동으로 나눠졌다. 우리나라에 비해 지하철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세계 최대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대형 미술관이여서 인지 정말 거대했다. 나는 입을 다 물수가 없었다. “금옥아~ 여기 다 구경하려면 3일 넘게 걸릴걸?” 신기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한다. 이 넓은 박물관은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너무나 넓어 비너스, 모나리자 등 유명한 작품만 돌아보고 다음 목적지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향해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를 출발하기 전에 우린 너무 배가고파 길거리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난 집에서 챙겨온 볶은 고추장을 꺼내어 음식에 짜 놓고 찍어 먹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주방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추장에 반응을 보였다. 오빠는 그 사람을 향해 “코리아소스”라며 말을 계속 했다. 그 사람은 너무 고맙다며 냄새를 먼저 맡고 맛을 보더니 표정은 별로였다. 맛있는 식사를 끝내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관람하고 지친 몸으로 호텔로 돌아갔다.

▲ 파리의 세느강 위로 퐁네프의 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는 한국에서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여행이 시작 되었고, 몽마르트르 언덕에 힘들게 올라갔다. 언덕을 오르며 남편에게 “오빠~ 여기는 계단이 너무 많아 올라가다 목이 말라서 몽마르트 언덕인가봐요”라고 했더니 남편은 껄껄대며 웃는다. 몽마르트르언덕에서 추억에 그림을 남기고 베르사유를 관람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파리에서 마지막 날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마지막 여행을 시작했다.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을 시작으로 해서 시내 곳곳을 다녔다. 시내는 럭셔리 그 자체였고, 나는 마치 내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라는 영화속에 주인공처럼 유명한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스테이크와 서비스로 준 와인과 디저트를 먹으며 한껏 기분을 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센 강 유람선을 탄 다음 언제 올지 모를 파리 시내를 천천히 구경하며 4박6일에 추억을 되새겼다.

깜짝 선물로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준비해준 남편이 너무나 고맙고 남편의 유창한 영어실력 덕분에 배낭여행을 편하게 해서 감사하다.

그리고 여행중에 남편이 웃자고 한말이 있다.

“ 금옥이 너 오빠 아니었으면 지금 한림읍 명월리에서 부모님 도와 창고에서 쪽파 다듬을 껀디 촌년 출세했다잉” <헤드라인제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박금옥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박금옥 객원필진은...
 

박금옥 생활복지사는 고등학교 때 평소에 집 근처에 있는 성 이시돌재단 양로원에 어머니가 봉사활동을 하러 가실 때마다 따라 다니면서 자연스레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된다. 그러다 전공과목도 사회복지과를 선택하게 되고 아예 직업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외길을 걸은 지 어느덧  6년째다.

그 동안 그녀는 아동, 노인, 장애인을 두루 다 경험하던 중 노인시설에서도 근무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 중증의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그녀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주게되면서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에덴실비노인요양원에서 3년넘게 근무해왔다.

그곳에 근무하면서 그곳에 요양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써왔다. 그러다, 2009년 그는 결혼을 하면서 요양원 일을 잠시 멈춘 상태이다. 앞으로 신혼생활에서부터 주변의 사는 이야기를 집필할 예정이다.

"함께 도움이 되는 세상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며 글을 올리고 있는 그녀를 통해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편집자 주>
 



<박금옥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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