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기 위한 예술, 길 위에서 제주의 '이상'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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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 위한 예술, 길 위에서 제주의 '이상'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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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술가, 섬에 '혼'을 불어넣다 - (1)청년예술가 이상

제주도는 환상의 섬이라고 불린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그 지역 특유의 자연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고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제주의 자연은 계절이 바뀌면 또다시 제 모습을 새롭게 바꾼다. 제주가 물리적으로 고립돼 있어도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는 제주 안에도 수많은 제주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제주 그것은 자연일 수도, 문화일 수도, 역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건 역시나 사람이다. 사람들이 제주를 환상의 섬으로 생각하게 된 연유에는 섬에 대한 제주 지역민들의 애착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서도 이 섬을 유독 각별하게 생각하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를 배경으로 독창적인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제주독립예술가들이다.

신예부터 원로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그들의 예술적 열망이 제주에 특별한 혼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상을 마주하면 그의 이름만큼이나 이상적인 무엇인가를 그에게서 느낄 수 있다. 온몸에 바다처럼 흐르는 타투, 또렷하고 아득한 눈동자, 나무뿌리처럼 단단한 손아귀, 차분하고 일관된 톤의 목소리. 그를 처음 보는 누구라도 단번에 그가 뼛속까지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은 제주에서 주로 거리예술, 공공공간예술, 다원예술이라고 불리는 장르를 기반으로 공연을 만드는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장르와 매체의 경계 없이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을 창작하고 기획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는 비영리문화예술단체 '이상의 이상'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상의 이상'은 특정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예술가들이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해 달려가고 헤어지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주 퍼포먼스 예술가 이상 ⓒ헤드라인제주
제주 퍼포먼스 예술가 이상 ⓒ헤드라인제주

하지만 장르로써의 예술로 그를 정의하기엔 예술이란 말의 공간이 너무 좁아 보인다. 지난 11일 이상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예술가 이상에겐 예술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예술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 직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이상은 안팎으로 급변해가는 제주의 상황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섬의 매력이 개발, 발전이란 명목으로 짓눌리는 상황을 마주할 때면 이상은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역설적으로 그의 예술혼은 오히려 더욱 애절하고 뜨겁게 불타기만 한다.

지난해 서귀포 수산마을과 지난 2019년 제주시내 골목길에서 공연된 거리극 '나의 살던 고향은'을 보면 그것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예술가와 시민이 같이 만들어간 이 공연은 사전 워크샵에서부터 깊은 울림과 함께 시작됐다. 예술가와 시민은 생애사 나눔 등의 시간을 통해 각자의 생애를 돌아보고 타인의 생애를 확인하며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미를 공유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사전 워크숍 ⓒ헤드라인제주
'나의 살던 고향은' 사전 워크숍 ⓒ헤드라인제주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획된 공연은 현장에서 퍼포먼스와 안무, 플래쉬 몹 등의 형식이 융합된 거리극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통해 이상은 제주의 분쟁, 난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등 물리적 거점의 상실이 고향, 기억, 시간, 정체성, 뿌리 등 정서적 거점의 상실로 이어지는 상황을 생동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은 키워드들을 난민, 성소수자, 2년마다 거처를 찾아다녀야하는 불안한 삶, 쫓겨나고 빼앗기는 존재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와 함께 엮어냈다.

제주 어느 골목길에서 진행된 '나의 살던 고향은' ⓒ헤드라인제주
서귀포시 수산마을에서 진행된 '나의 살던 고향은' ⓒ헤드라인제주
제주 어느 골목길에서 진행된 '나의 살던 고향은' ⓒ헤드라인제주
제주시 어느 골목길에서 진행된 '나의 살던 고향은' ⓒ헤드라인제주

이상은 또한 1991년 제주개발특별법 반대를 외치며 분신했던 양용찬 열사의 일대기를 다룬 창작연극 '사랑 혹은 사랑법'과 제주의 난개발을 주제로 퍼포먼스, 인쇄물발간, 설치전시 등을 진행했던 '보이지 않는 마을들' 프로젝트를 통해 제주의 아픔과 환상의 섬 제주도의 이면을 들춰내는 기획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제주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다만, 제주에 살면서 받는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영향들이 어쩔 수 없이 작업에도 자연스레 반영된다"고 말했다.

이어 "거리극 '나의 살던 고향은'은 내가 제주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제주에 살며 난개발과 환경파괴, 강정마을과 제2공항 등의 이슈들을 일상으로 경험했던 영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작업을 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고 얘기했다.

이상에게 예술은 그저 하나의 장르로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예술은 제주에서 사는 너와 나의 평화와 안녕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다.

이러한 열망을 담은 그의 뜨거운 예술혼은 길 위에서 시작돼 제주 전체로 뻗어나간다. 그리고 이곳과 저곳으로 흩어진 제주는 다시 이상에게 되돌아와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상의 공연을 보면서 각자만의 사연을 안고 사는 개인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제주의 이상적인 미래'에 대해 그토록 진지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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