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의 '행복한 미술'](12) 본질의 구성에서 사유하는 현대미술가 하석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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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의 '행복한 미술'](12) 본질의 구성에서 사유하는 현대미술가 하석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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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과 소멸의 과정

제주를 중심으로 가까운 곳에서 빛나는 예술가 하석홍이 존재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현대미술을 관통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섬과 추자섬을 연결하면서, 동북아시아의 중심인 제주가 문화예술섬이 되는 것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2년 동안 심은 씨앗이 어떻게 자라게 될지 상상을 실현하는 하석홍 예술가를 만났다.

하석홍(b.1962, 제주) 작가는 흰머리 예술가라서 눈에 잘 띈다고 소개한다. 반면, 그의 작품은 구별하기 어렵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야 하는 목적이 있다면 더욱더 그러하다.

돌팽나무를 배경으로 돌의자에 앉아 있는 작업실의 하석홍 예술가. ⓒ헤드라인제주
돌팽나무를 배경으로 돌의자에 앉아 있는 작업실의 하석홍 예술가. ⓒ헤드라인제주

초기 작품은 거의 모든 문화에서 사용하는 그릇, 대접, 항아리, 숟가락, 생선 등을 그렸다. 이후 부조로 생선이 있는 화석과 입체의 제주돌(현무암), 운전이 가능한 돌 자동차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시는 1983년도 4인(박경훈, 이경재, 하석홍, 홍성석) 전으로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제주 최초로 현대미술 그룹의 <관점> 전시를 해왔다. 이 그룹은 많은 작가가 활동했지만, 2000년도 중반 무렵까지 전시하고 멈춰있다.

하석홍 작가의 제1회 개인전(1997년)은 <그릇 속의 그릇>, 제2회(1999년)는 <끼니>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하석홍, '그릇 속의 그릇', 혼합재료, 10F(부분), 1998.ⓒ헤드라인제주
하석홍, '그릇 속의 그릇', 혼합재료, 10F(부분), 1998. ⓒ헤드라인제주
하석홍, '모든 존재는 신성하다', 혼합재료, 30F(부분), 1998.ⓒ헤드라인제주
하석홍, '모든 존재는 신성하다', 혼합재료, 30F(부분), 1998. ⓒ헤드라인제주

<그릇 속의 그릇>과 <끼니>의 작품들은 물감의 양과 패트롤 오일 및 물기 조절, 우연의 효과와 찾고자 하는 것을 일체화시켰다.

멈춤의 시간을 두고 물감을 여러 겹 쌓아 올린 물체들은 정교하지 않고 투박하게 표현되었지만,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아니 흙 속에서 발굴한 유물처럼 보인다.

손때, 먼지, 곰팡이마저 털어내지 않고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은 것 같은데 흙을 연상시키는 자연의 색으로 채색하였다.

막 지은 쌀밥이나 제주 귤을 담아서 그렸다면 따뜻하고 정겨운 작품이 되었을 텐데, 하석홍의 그릇은 모두 비워진 채로 그려져 있다. 오롯이 그릇만을 그린 것이다. 새롭고 깨끗한 그릇이 아니라 유물처럼 보이는 오래된 그릇으로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그릇에서 존재를 찾았다. 생의 척박함 속에 깃든 소중함과 신비로움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먹고 죽어서 흙이 되고, 그 흙은 다시 그릇이 된다.”라는 작가의 말이 그릇 속에 담겨 있었다.

이 작품들은 새로운 영감으로 이어졌다. <끼니> 전시이다.

<끼니>에서는 숟가락, 생선 등을 그렸다.

‘숟가락’은 밥을 떠먹는 도구이지만 밥상에 둘러앉음으로 공동체를 이룬다. 이것은 식구이자 가족을 의미한다. 숟가락은 죽음과 생명의 사이에 있으면서, 문화의 상징이자 존재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릇보다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 숟가락은 물감의 색을 덮은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거칠고 두터운 마티에르가 숟가락의 숭고를 강조한다.

“물이 여기 있을 때는 물이지만, 마시면 내 몸이 되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입니다.”

<끼니> 전시는 일본 지바현의 아트빌리지에서 ‘국제미술초대전’으로 이어졌고, 극진한 대접에 감동을 하니 “어떤 작업을 할까?”로 고민이 깊어졌다.

하찮은 것에 본질이 있다.

그림을 그려야만 살 수 있는 예술가의 운명은 잘 그리는 것보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예술가’는 당연하게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선택이다.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생계의 위협에서 줄타기하는 곡예사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제주로 자전거 무전여행을 온 학생들을 만났는데, “어디가 좋았어?”라는 질문에 “바닷가에서 맨발로 따뜻한 현무암을 밟을 때가 가장 좋았어요.”라는 대답을 듣고 “나도 어렸을 때처럼 맨발로 현무암을 밟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화석 작품에는 제주에서 흔히 보이는 생선이 있다. 부조 형태여서 밟을 수 있는 작품으로도 연결되었다. 전시장에서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것이 불편해서, <맨발로 걸어보세요>, <만져 보세요>라는 주제로 관람객과 가까워질 수 있는 전시를 했다.

이른바 ‘하석홍’을 많은 사람에게 각인시킨 전시는, 2010년 월간 미술세계 창간 26주년 특별기획 초대전이다. ‘돌’로 된 작품을 좋게 봐주었고, 하석홍은 ‘돌 작가’가 되었다. 인사아트센터 전관에서 개최한 다양한 작품 중에서 ‘인기 작가’로 선정되어 이듬해 개인 전시로 다시 초대를 받았다.

하석홍,  2006부산비엔날레 '자연을 밟는다'.ⓒ헤드라인제주
하석홍, 2006부산비엔날레 '자연을 밟는다'. ⓒ헤드라인제주
하석홍, 2016 오백장군갤러리 '夢(몽)돌-바람소리'. ⓒ헤드라인제주
하석홍, 2016 오백장군갤러리 '夢(몽)돌-바람소리'. ⓒ헤드라인제주

하석홍은 제주돌(현무암)을 입체로 만들기 위해 재료, 기법을 연구했다. 사실, 돌 작품은 정교한 그림이다. 세상에 없는 존재하지 않은 돌을 만들었다. 이것은 돌처럼 보이도록 구성되어 있지만, 진짜 돌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게 하려는 것일까!

혹은 진짜처럼 잘 만드는 기법을 보여주는 것일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짜가 히트 치고 있거든.

IT 분야는 정보를 주고받는 데 있어서 여러 관점을 통과했다.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 이뤄지므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고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 원본(진짜)과 복사본(시뮬라시옹)의 확인이 무의미하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처럼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은 원본이 상실되어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석홍 작가는 평면에서 입체로 시각을 넓히면서 자신이 서 있는 예술의 주소지와 존재를 깊이 보고, 제주 탄생 기반의 ‘돌’을 탐구하고 정교하게 그렸다. ‘철학’은 무겁고 어려운 중력을 내재하고 있지만, 그것을 비틀어서 보면 가볍고 유쾌하다. 현상과 환상의 사이. 보이는 것과 감추어진 것의 속살. 내가 보고 있는 본질을 묻고 답하게 한다.

하석홍의 ‘돌’은 플롯의 변화와 관점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진짜 작품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결론짓지 않았다. 작가의 돌과 자연의 돌을 같이 두면,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대체로 진짜 돌을 가짜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석홍의 돌은 그것을 보여주는 매개체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서 너머에 있는 존재를 보는 것도, 가짜를 진짜로 보고 감동을 하는 것도, 또 다른 감정도 모두 가치가 있다. 예술가로서 역할을 다한 작가는 결론을 열어 두었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느낌은 각자의 몫이다. 현대 사회의 모습처럼.

예술가 하석홍은 또 다른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으니 우리에게 다가올 선율을 음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제주섬과 추자섬에서...

창작을 하는 하석홍 예술가는 전시 외에도 전반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지속해왔다. 제주 최초로 대안공간과 플리마켓을 운영한 바 있다. 2005년도 (사) 문화조형연구센터를 창립하고, 같은 해 <대안공간 제주 개관>전을 개최했다. 2006년도에는 플리마켓으로 <아트 쇼핑>전을 진행하는 등 왕성한 경험의 시간은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연결된 것이다.

‘2019년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추자섬 예술기지 프로젝트>를 2020년까지 2년 연속 하석홍 책임 작가로 활동했다. 여기에는 참여작가와 보조작가, 마을 분들, 자원봉사자, 추자중학교 학생, 프로젝트 행정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집중하고 헌신했다. 추자도는 문화·예술 혜택이 거의 없는 곳이어서 마을미술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추자섬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지키면서 환경 보존에 신경을 썼다. 추자도에 예술과 작품이 스며들게 했으며, 공동체적 의식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화합과 치유의 개념을 담았다.

상·하 추자도가 화합하면서 자신감과 긍지를 상징하는  춤추자 'ㅊ'. ⓒ헤드라인제주
상·하 추자도가 화합하면서 자신감과 긍지를 상징하는 춤추자 'ㅊ'. 조형물은 인체를 형상화한 작품.  ⓒ헤드라인제주
상·하 추자도가 화합하면서 자신감과 긍지를 상징하는 춤추자 'ㅊ' . 조형물은 인체를 형상화한 작품.ⓒ헤드라인제주
상·하 추자도가 화합하면서 자신감과 긍지를 상징하는 춤추자 'ㅊ' . 조형물은 인체를 형상화한 작품. ⓒ헤드라인제주

오는 2월 25일 추자도에서 그간의 사업을 마무리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추자도에서, 미술, 영화, 패션 등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2009년 출범한 한국의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예술가 일자리 창출 목적인 ‘예술 뉴딜정책’ 일환이다. 아픈 곳을 발견하고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10년이 넘었다. 고쳐야 할 것을 그대로 두면서 몸짓만 키우는 형식은 충분히 경험했다.

일례로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예산의 항목이 없어서 지출 적용을 받지 못하는 회의비, 교통비, 출장비, 숙식비 등은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이다. 작품에 직접적으로 관련한 비용만 적용하다 보니 생략된 것들인데, 실질적으로는 매우 필요한 부분이다. 일자리는 창출했을지 몰라도 작가의 안정적인 수입 창출은 여전히 구멍이 많다.

작품도 마을미술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공공미술의 공동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사후 관리, 유지 보수, 주인 의식을 갖는 것이다. 작품이 쓰레기가 되고 골칫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국외의 성공사례를 보면서 개선할 사항과 발전 방안을 현실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끝으로 2020년도 9월, 창간 15주년을 맞이하는 「미술과 비평」에서 하석홍은 ‘제1회 미술과비평 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미술 전문 잡지에서 평론가들이 선정한 결과이므로 큰 의미가 있다. 하 작가는 제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많은 곳에서 관심을 받고 있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한정희 예술 감독)

하 석 홍 (河 晳 弘)

한국, 중국, 일본, 미국에서 14회의 개인전 및 초대전

국내·외 기획초대전에 400여 회 출품

주요 전시 경력

2020년 미술과비평기획 ACAF2020초대작가(예술의전당)

2019년 루치올라초대 “하석홍전”

2018년 예술의전당기획 “봄그리고봄전”에 직지코드의 영화감독 우광훈과 하석홍 돌작가의 설치미술과 콜라보전시 초대출품

2017년 비오토피아갤러리

2016년 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기획초대전

2015년 중국양주건성2500년 한국화가초정전 “大墨東方”

2015년 월간미술세계 창간 29주년 특별기획초대전제5회 KOAS 선정 인기작가

2017년 제1회 제주비엔날레초대작가(제주국제공항,알뜨리비행장작품설치)

2017년 경기도립미술관 가족체험특별전초대작가

2011년 THE WESTERN ART SHOW (western gallery, USA)

2011년 국제미술초대전(일본 지바현 아트빌리지) 아시아 미술제(일본, 제주)

2006년 부산비엔날레 초대작가 등

현재) 전업작가, (사)문화조형연구센터, ㈜추자예술섬대표

2019~2020 마을미술프로젝트 주자예술기지프로젝트 책임작가

제주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코너는?...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은 다양한 기관의 전시 · 기획자 · 작품 · 작가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지위를 향상하면서 미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취지에서 연재합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미술이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읽고 작품을 감상하는 계기 마련과 미술을 통해서 개인의 행복한 일상을 마주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정희 아트 디렉터가 총괄 기획한 전시로는, 2020 아트페스타in제주(5th), 2019 제주국제평화센터 ‘평화의 꿈’ 및 'DMZ 평화 생명의 땅', 2018 제주해짓골아트페어, ICC JEJU 제주2015쇼케이스 '아트&아시아', 2015 서귀포예술의전당전시실개관기획전 '서귀포에 살다', 2015/2016 서귀포시교육발전기금마련전 등이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 기획, 언론 기고, 미술 연구조사, 미술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정희 예술 감독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과 졸업

예문사 「학예사를 위한 소통하는 박물관」 공저

제주특별자치도 설문대여성문화센터 운영위원

제주 삼매봉도서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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