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의 제주 미래담론] (23)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 정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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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의 제주 미래담론] (23)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 정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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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가난 구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가난을 구제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전제하고 가난한 사람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살아왔다.  동시에 그건 부자와 국가가 자기 보신을 위해서 펼쳐온 하나의 오래된 체념이자 도피의 말이기도 했다. 가난 구제가 불가능하다고 해야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도 위정자들은 무능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군사력과 경찰력으로 외부와 내부로부터의  위협을 잘 막아내면 그 역할을 다 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게, 그동안의 고전적인 최소정부론의 골자이다. 

생각이 변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라면, 그 정부는 국민들을 위한, 국민의 정부여야 한다는 것. 가난 구제에 나라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 가난이 가난한 사람 개인 탓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 행여 가난이 불운이나 재난 또는 개인적 사연을 포함하여 여러 다양한 이유로 가난할 수 있음으로, 어떻게든 세밀하게 해결책을 강구해 보자는 것.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정부가 공공사업과  복지지출 등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한번 더 생각을 바꾸어보자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이 그것이다. 기본소득은 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자연히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실현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시작하면, 가난 구제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 주는 전향적 방책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미래 정부의 세번째 보편적 3대 역할을 안보ㆍ치안ㆍ기본소득으로 삼아 나가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부의 보편적 기능으로 기본소득 제공이 자리잡게 되면,  기본소득을 뒷받침할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의 방안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리라 본다. 집단지성에 대한 기대가  그것이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처음부터 한꺼번에 다 만족스럽게 다 주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 누구에게나 다 선별없이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안보와 치안처럼, 기본소득도 그렇게 모든 국민에게 지급되도록 하는 보편성에 그 의미를 두어 생각을 바꾸고 시동을 걸어보자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안보와 치안은 그 제공이 충분하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게 아니라 보편성을 띤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처럼 기본소득도 일단 선별이 아니라 보편성을 갖추면 된다. 처음부터 충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기본소득당이 내거는 공약처럼, 국민 모두에게 매월 60만원을 지급해야만 기본소득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매달 30만원이면 어떻고, 10만원이면 어떤가. 대한민국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서 보다 담대하고 창의적으로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매달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을 얼마나 지급해 줄 지는 매년 정기국회에서 정부예산을 짤 때 의견을 모으면 될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상이 힘든 때인지라 작년에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받는 게 가능했다. 물론 보편적이지만 정기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경기부양에 유의미한 도움이 되었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고, 무엇보다 소상공인ㆍ자영업자들이 효과를 체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므로 일정액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 사례로서의 의의는 크다.  기본소득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조그마한 준비이자 몸풀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작년에 이어 올 해도 연초부터 모든 국민이 코로나방역 사회적거리 2.5단계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렇게 전 국민이 크든 작든 그 나름대로 어려움을 묵묵히 감수하고 있는 데 정부가 가만히 구경만 하는 건 도리가 아닐 것이다. 그 점에서 2차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은 욀가불가의 이슈가 아니다.  얼마를 어떻게의 문제이다. 가능하면 연초의 밝은 새해 소망을 조금이라도 품고 갈 수 있도록 조속히 지급할 필요가 있다. 이번  코로나재난 지원을 통해 정부 재정 운영에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향후 기본소득의 실현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와 함께.

코로나 팬데믹으로 양극화가 가파르게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가난구제를 나라도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양극화도 어쩔 수 없다고 수수방관하는 건 조선시대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건 복지국가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민주시민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안보와 치안에 이어 어떻게든 격차 줄이기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 정부의 역할에 기본소득은 필수적 방책이라는 생각이다. 그건 하자 말자가 아니다.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총리는 이를 '단세포적 논쟁'이라고 한다. 야당의 정치적 공세라면 모를까, 국정의 통합을 이끌어가야 할 총리의 입으로 할 얘기는 아니다.  그것도 집권당 유력 대선 후보에게 대놓고 그런 비판을 하는 건 같은 당의 정치인으로서 예의도 아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주장을 단세포적 논쟁으로 치부하는 게 오히려 단세포적 발언이 아닐는지.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선별에 방점을 두고  복지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제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과 그로 인한 광범위한 민생고통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급하니까 막풀자는 것은 지혜롭지도 공정하지도 못하다'며 난리이다.  전형적인 선별론의 입장이다. 국민의힘과는 다른 민주당 정부라면 그렇게 선별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2021년 1월 대한민국의 국민들 모두가 급하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도 참고 기다리라고만 한다. 1년을 버티어냈으면 충분한 게 아닐까. 기진맥진한 엄동설한에서 지혜로운 건 무어고 공정한 건 무얼까. 국민들 어려울때 쓰라고 정부의 곳간을 지켜온 것일텐데 국민들 다 쓰러지고 난 후에 사후약방문을 할 셈인가.

우리 정부의 국채비율은 40%로 OECD 평균 110%의 절반이 조금 안된다. 이건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동시에 정부의 부채가 적다는 건 그만큼  나라를 운영하는 데 우리 국민들의 헌신과 비용 부담이 컸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민 모두가 어려운 이때 여럭이 있는 정부가 과감하게 나서 달라는 게, 그리 못마탕한 요구는 아닐 터이다. 우리 국민들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1%로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지 않은가. 이게 우리 국민들이 검약하지 않거나 일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 했기 때문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기로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국민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가계부채가 많다는 건 정부가 부담해야 할 비용들을 국민에게 떠넘겼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놓고는 이를 두고 재정건전성을 확보했다면서 자화자찬하는 건 국민들의 고통과는 무관한 그들 곳간지기들끼리나 하는 관료적 언명일 뿐이다.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차등 지원이 보편 지원보다 도덕적으로 하위라는 게 아니다. '경제피해가 커지면 더 많은 국민에게 지급'하려고 한다면서도 전국민 재난지원금 논의가 '지금은 조금 빠르다'는 그런 안일한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2021년 1월의 대한민국은 답답하고 막막하다. 그 답답함과 막막함의 중심에는 영업 금지와 제한을 받은 수백만의 자영업자들이 있다. 코로나감염 확산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공동체를 위해서 가게 문을 닫으라는 것. 그렇게 12월 8일 이후 지난 1달 이상 영업을 하지 못한 자영업자들에게 정부가 가까스로 보상을 결정한 게, 100만ㆍ200만ㆍ300만원 차등지급이다. 그거 하나 처리하느라 한 달이 더 걸릴 정도로 정부의 일처리는 답답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지만 말고 어떤 해법이든 찾아 막막함을 시원하게 뚫어줄 유능한 정부가 어디 없을까.  <양길현 / 제주대학교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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