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때 재판도 못 받고 끌려가 실종된 아버지, 형님...명예 회복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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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때 재판도 못 받고 끌려가 실종된 아버지, 형님...명예 회복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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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4.3행불인 40명 재심 청구 소송 심리
"생일날 제사 지내는 형님의 억울함 풀어달라"
23일 재심 청구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자 할머니, 김명춘 할아버지. ⓒ헤드라인제주
23일 재심 청구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자 할머니, 김명춘 할아버지. ⓒ헤드라인제주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 등으로 옥살이를 하고 행방불명된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 청구 소송에서 유족들이 4.3당시 재판도 받지 못하고 끌려가 실종된 가족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고 재판부에 눈물로 호소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는 23일 오전 201호 법정에서 4.3행방불명 수형인 고(故) 김덕윤, 김명환씨 등 40명에 대한 재심 청구 소송 심리를 진행했다.

이날 심리에는 고 김덕윤씨의 딸 김용자(82) 할머니와 김명환씨의 동생 김명춘(83) 할아버지가 증언에 나섰다.

법정에 김용자 할머니는 1948년 4.3당시 아버지가 누명의 쓰고 억울하게 끌려가 실종됐다며 명예회복을 해줄 것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김 할머니는 "어느날 갑자기 아침에 자는데 새벽에 군인들이 신발을 신은채 문을 두들기고 집 안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칼로 찌르고, 총을 쏘며 집안을 조사했다"며 "그러다 군인들이 양쪽 팔을 잡고 아버지를 끌고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군인들이 아버지를 데리고간 날 바로 경찰서에서 사람이 와서 아버지와 동네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며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친척인데 연령도 비슷하고 같은 이름이 있다고 하니 경찰이 그 분을 데리러 오라고 했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이후 아버지가 여기까지 자기를 끌고오게 만든 사람을 앞으로 데려와 달라고 하며 '너무 억울해서 재판을 걸겠다. 재판을 하려면 돈이 드니까 돈을 준비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이후 아버지와 면회를 못하고 재판을 한지 안한지도 모르겠다"며 "나중에야 아버지가 재판이 안됐다고 돈이 경찰서로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아무 소식이 없던 차에 1948년 12월에 부두에서 아버지를 우연히 본 친척으로부터 '나 육지로 끌려가니 연락을 해달라'는 얘기를 아버지가 했다고 들어서야 아버지가 육지로 가는 걸 알았다"며 "이후 아버지가 대전형무소에서 '집안 일 잘 보고 동생들 잘보고, 어머니와 잘 살고 있어라'는 엽서가 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 진주형무소에서 '내가 얼마 없어서 풀려 나갈거니까 아버지 물건들 잘 소중히 간직해두라'는 아버지의 편지가 온 다음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며 "어느날 동네 할아버지가 와서 아버지가 바다에서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 할머니는 "아버지가 무슨 죄가 있길래 그 젊은 나이에 그 많은 고초를 당하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지금까지 저는 자식으로서 얼마나 억울한지 모른다"며 "억울한 누명을 전부 벗겨주고 명예를 회복해주길 바란다"고 통곡했다.

이어 증인석에 선 김명춘 할아버지는 "1948년 5월쯤 형님이 밭일을 하다가 토벌대에 끌려갔다는 얘기를 동네사람한테 들었다"며 "형님이 끌려가고 2~3개월 후에 관덕정 부근에 수용소에 면회를 갔었는데 면회는 못하고 먼 곳에서만 보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먼 데 떨어져서 형님을 봤지만 정말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은 것 같았다"며 "형님이 물지게를 지고 물 뜨러 가는데 경찰인지 군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앞뒤로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런 뒤에 한 1~2개월 있다가 면회를 다시 갔는데 형님이 다른 곳으로 가버려서 없었고, 이후 소식은 전혀 없었다"며 "형님 제사도 날짜를 생일로 지내고 있는데, 정말 비참하고 억울한 이 마음을 잘 알아서 풀어주길 간절히 부탁한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재판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른 4.3재심청구사건과 같이 수형인 명부의 동일성 여부 등을 종합해 재심 개시 여부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4.3 재심청구 피고인이 300여명에 달해 피고인 수를 나눠 순차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재심 개시 여부는 4.3진상조사 보고서와 수형인명부, 재심청구인의 진술 등을 토대로 결정하게 된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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