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대, 씨앗교회와 사랑제일교회의 상반된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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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시대, 씨앗교회와 사랑제일교회의 상반된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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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의 제주 미래담론] (10) 코로나19 사태와 교회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헤드라인제주

코로나19로 인해 교회 사정도 매우 어렵다. 비대면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중이 모여서 믿음을 공유하고 재확인하는 종교 의식을 중시하는 경우, 비대면은 정말 곤혹스러울 게다. 해법 찾기가 쉬울 것 같지 않기에 걱정이 많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상시 착용 등 비대면이 일상화 되는 현금의 비상 상황임에도 교회가 대면 예배를 고집하는 이유. 거기에는 일차적으로는 천년 이상의 긴 세월간 전승해 내려온 종교적 예배의식을 어떻게든 고수해 나가고자 하는 종교적 열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그 이면에는 마치 자영업자들처럼 헌금이라는 생존상의 절박함도 한 몫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웃사랑과 약자위로를 통해 궁극에는 인간구원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공기로서의 교회가 당면한 어려움을 줄여줄 수 있도록 공동체 차원에서 모종의 대책 마련은 불가한 것일까ㆍ코로나19와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헌법 12조의 선언적 규정에 지나치게 구속되어 방기만 하는 것이 아닌 그 어떤 응급처방은 없는 것일까ㆍ

교회의 어려움에 대한 이런저런 안타까움을 되새기고 있던 필자에게, '예배당 없애 기본소득 나눠주는 목사'라는 기사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교회는 장소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고양시 씨앗교회가 바로 그 당사자들이다. 4명의 공동목사가 운영하는 신도 60~70인 규모의 교회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도들에게 비대면 예배로 전환함에 따라 아끼게 된 예배당 임대료를 '기본소득'  개념으로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평소 종교가 특정 정파로서의 직접적인 정치참여가 아닌 공동체를 위한 느슨한 사회참여를 기대하고 옹호해 왔던 필자로서는, 씨앗교회의 이러한 이웃사랑 실천을 보면서 숙연해졌다. 바로 이것이 종교라는 생각에서이다. 어떻게든 씨앗교회의 작지만 소중한 행보에 동참하고 싶기도 하다.

씨앗교회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안 좋은 의미로 유명세를 탄 대표적인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 전광훈씨다. '중국에서 유입된 감염병 가지고 특정 집단에 모든 잘못을 돌리고 있다'는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인 전광훈씨. 그는 스스로를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심지어는 여차하면 순교할 각오까지 피력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순교인지가 전혀 설득력이 없어보이는데도  마냥 자기도취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걸 보면서, 어처구니 없어 하는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 2주일간 거리두기 2.5단계를 통해 일상포기가 강요될 정도로 코로나19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 저간의 사정에는. 휴가철 경기 살리기를 위해 방역메시지가 느슨해지는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제일교회 관련 코로나 확진자가 1,083명이나 되는 걸 보면, 사랑제일교회가 대거 참석한 8ㆍ15 광화문 집회로 인해 코로나가 더 확산되었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일상포기를 포함하여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게 되었다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그 점에서 전광훈씨를 포함한 태극기 집회는 코로나 방역 차원에서 불허되는 게 합당하다.  또한 그 불허지침을 위반했으면 벌금 등 그에 상응한 처벌조치를 취하는 것은 전혀 종교탄압일 수가 없다. 이승에서의 삶의 불안과 무기력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하는 게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본다면, 전목사의 순교 운운은 어불성설이고 적반하장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이다. 

더욱이 전광훈씨처럼 기독교입국론의 논지에서 기독교정당을 창당하는 등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와 종교 두 영역은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융화가 어려울 정도로 다르기 때문이다. 종교가 초월적인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데 반해, 정치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유념하면서 상대성과 타협을 강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호간에 함께 하기가 쉽지 않은 종교와 정치가 서로 긴밀히 연관되려고 할수록 불협화음과 긴장은 커지게 된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롯한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보듯이, 특정의 경전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종교의 정치화는 자주 유아독존론적 자기 정당화로 인해 경직성과 폭력성을 띠게 된다. 

세계적 수준의 종교는 본래 혁명적이고 휴머니즘을 내재하고 있다.  다만 유일신이라는 배타적 믿음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만큼이나 현실에서는 정치적 고집과 편향을 지니게 되기가 쉽다. 그 결과가 어떤 불행과 파멸을 가져왔는지는 종교전쟁사를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 기독교 일부의 경우도 반공노선 고수에서 보듯이, 강한 종교적 신념과 믿음으로 인해  특정의 정치적 신념까지도 절대화함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양보와 타협을 불허하는 경향을 띠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나친 신념은 협상의 가치를 우선시 하는 정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함과 미래불안이 중첩되는 요즘, 씨앗교회와 사랑제일교회의 상반된 행보를 보연서, 정치와 종교는가능한 한 불가원 불가근이 바람직해 보인다는 생각을 재확인해 본다. 그러면서 씨앗교회의 4분 목사분들에게는 경의를, 신도분들에게는 코로나19의 어려움을 잘 혜쳐나가시기를 기원해 드린다. <양길현 / 제주대학교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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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상업성 사이 2020-09-11 09:44:40 | 39.***.***.184
중세시대 종교혁명으로 탄생한 개신교가 21세기엔 왜 그들이 개혁의 대상이 되었는지 돌아다 봐야할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

개천절 2020-09-12 10:40:58 | 39.***.***.144
개천절에도 집회를 강행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문제는 보수 정치권에서 이를 슬며시 부채질 하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는 거지. 옛날에는 혹국정신이 깃든 종교가 이젠 오히려 나라와 백성을 위태롭게 만즐고 있으니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