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과 제주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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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과 제주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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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49) 역사속의 제주농업 문화

제주도의 산세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져 육지부의 산세와는 사뭇 다른 경관을 연출한다. 제주도 지질 형성의 원인은 화산활동으로 모두 4∼5단계에 걸쳐 110회 내외 용암분출이 확인되고 있다. 화산활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가운데 제주 섬이 조성되고 이후에 지금의 제주의 토양이 형성 되었으며 360여 개의 오름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제주도를 오름의 왕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고 할 만큼 오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각각의 오름마다에는 제주 사람들의 얼과 혼이 서려있다. 오름은 바람이 센 제주에서 바람막이가 되는 지역에 마을이 만들어지고 목축업의 근거지가 되고 제주 개벽의 신화를 창조하고 항쟁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제주의 오름들은 역사적, 학술적, 문화적, 생태적, 경관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자연문화유산이다. 오름은 조그마한 산체를 말하는 제주어로 제주의 오름들은 산, 악, 봉, 오름, 동산, 메, 미, 올 등 매우 다양하게 표기되거나 불리고 있는데 산방산, 단산, 군산, 송악산, 영주산과 같은 산은 뫼의 한자 표기이고, 절울이오름, 아부오름, 용눈이오름 같은 오름은 조그만 산체를 말하는 제주어이다. 성판악, 이승악, 수악과 같은 악(岳)은 일제강점기 지도 제작 시 사용된 오름의 한자 표기이다. 일출봉, 수월봉, 삼각봉 등 봉(峯)은 봉우리를 뜻하는 말이며 원당봉, 지미봉, 고내봉의 봉(烽)은 봉수대가 설치되었던 오름의 한자 표기라 설명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서부 애월 지역의 바리메, 왕이메, 노꼬메, 제주시 지역의 물장올, 쌀손장올, 불칸디올, 태역장올, 동부 구좌 지역의 감은이, 식은이 등 지역에 따라 오름 이름이 특별하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제주 섬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요충지였기에 주변 열강 세력들의 지각 변동 있을 때는 전선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오름은 제주 역사의 현장이면서 우리 민족 역사의 현장이며 세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제주의 오름은 1273년(원종 14) 삼별초의 대몽 항쟁이 붉은오름(광령)에서 막을 내리면서 세계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였고, 이후 1374년(공민왕 23) 목호의 난이 진압될 때까지 100여 년 동안 몽고가 들어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목마장 오름들은 말의 생산 기지로의 역할을 계속하였고 1895년(고종 32)에 공마제가 폐지될 때까지 오름은 수탈의 근원지가 되었다. 그리고 전망 좋은 오름들은 조선시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 시설의 역할을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군사 기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일제 말기에 일본군이 섬 전역을 요새화할 때 제주도의 오름을 주둔지, 훈련 기지, 격납고, 고사포 진지 등으로 쓰이기 위해 여기저기 파헤쳐졌다. 또한 제주 오름은 제주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인 4·3사건의 주요 배경이 된다. 1943년 4월 3일 새벽 1시를 전후해서 한라산 중허리 오름마다 봉화가 오르면서 무장 봉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금오름, 도두봉 같은 마을 주위의 오름에는 깃발, 대나무, 나팔 등을 이용하여 토발대의 출동을 알리는 ‘빗개’라 불리는 보초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당시 오름은 무장대들이 주둔하거나 훈련하며 활동했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고, 양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였으며, 학살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제주도 전역이 4·3사건 유적지 아닌 곳이 없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오름은 4·3사건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역사의 현장이 오름인 것이다. 이처럼 제주 오름은 그 존재 자체가 제주도와 중앙정부와의 국내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주변 강대국 사이의 국제 관계를 이해시켜주는 역사적 유산이다.

다양한 형태의 오름들은 제주도의 개벽 설화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인이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설문대할망 설화에는 오름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제주의 몇몇 설화와 전설에는 ‘아흔아홉’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백’은 완벽을 뜻한다. 그러기에 ‘백’이 ‘신’의 숫자라 한다면, ‘아흔아홉’은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제주인들은 자연 재해가 유난히 많은 절해고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그 결과를 자연에 맡기고 기다려야 했다.

따라서 ‘아흔아홉’과 관련된 오름의 설화와 전설들은 절해고도의 극한적인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제주인들은 오름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고,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거주지와 묘지를 택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풍수지리에 따라 분묘군을 이루는 오름이 있는가 하면, 상당수의 오름에는 전설이 있고 오름 주변의 마을들은 오름을 배경으로 한 설촌 유래가 있다.

왼쪽부터 금악봉에서 본 한라산과 오름들 모습과  고산 당산봉과 보리밭 풍경
왼쪽부터 금악봉에서 본 한라산과 오름들 모습과 고산 당산봉과 보리밭 풍경

제주에는 조선조까지 ‘당 오백 절 오백’이라 할 정도로 신당과 절이 많았고, 지금도 각 마을에는 여러 형태의 ‘당’이 남아 있다. 당은 신이 머무는 공간이지만, 단골 신앙민들이 드나드는 열려 있는 공간이며 인간의 문제를 기원하는 연행 공간이다. 1702년 이형상 제주목사가 신당 129곳, 사찰 5곳을 파괴하고, 1970년 미신 타파 운동으로 민간신앙이 많이 약화되긴 하였지만, 아직도 348개의 당이 존재한다는 것은 여전히 제주 지역은 민간신앙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의 위치는 구릉, 수림, 전답, 천변, 해변, 암굴 등 다양하다.

따라서 소규모의 산체인 오름은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당오름’이란 명칭을 가진 오름이 4개(송당, 와산, 고산, 동광)나 있다. 그리고 당이 있었거나 제터 기능을 하는 오름까지 합하면 23개소나 된다. 그만큼 오름은 예로부터 성소시하고 축원을 드리는 민속신앙의 터로 제주인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아 왔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선인들은 제주도의 명승지를 찾아 시문을 남겼고, 현대 문학의 배경이 되는 오름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오름에 대한 문화 자료와 유적을 발굴하여 문화 체험의 장으로 활용하고, 오름과 관련된 설화·전설 등을 채록하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훼손되지 않은 오름은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가 된다. 무더기로 돋아나는 야생초, 사철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야생화, 그리고 오름 분화구의 습지에 서식하는 희귀 동식물들은 그 가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사실 아직 우리는 오름 생태계에 대해서, 그리고 오름과 인근 지역과의 생태적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알지 못한다. 368개의 오름들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그럼으로써 각각의 오름뿐만 아니라 제주의 생태계 전체가 건강하게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상당수의 오름들은 개발되거나 개간되고 오름 주위로 수많은 도로가 뚫리게 됨으로써 오름들이 마치 섬처럼 격리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름 생태계의 그물 구조를 해체시킴으로써, 각각의 오름 생태계뿐만 아니라 제주도 생태계 전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오름은 지하수를 함양하고 기후를 조절해주는 환경 조절 기능을 한단. 오름은 제주의 칼바람을 막아줌으로써 주변의 거주지와 농지의 가치를 높여준다. 그리고 오름의 초지는 한라산의 울창한 산림과 함께 산소를 내뿜고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임으로써 대기 정화 기능을 한다.

오름은 강우에 의한 지하수를 함양할 수 있는 표면적을 높여주고, 물이 토양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해줌으로써 토양 침식에 의한 자연 재해 예방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또한 오름은 지하수를 보전함으로서 제주인에게 깨끗한 지하수를 공급해준다. 다시 말해서 오름은 ‘제주삼다수’라는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제주도의 청정 지하수의 원천이다.

오름은 굴종과 치욕, 갈등과 비극의 역사의 현장이다. 따라서 ‘평화의 섬’을 지향하는 오늘날 제주의 오름은 살아 있는 역사 체험의 현장, 산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오름은 제주 사람들의 얼과 혼이 서려있고 역사의 숨결이 흐르고 있다. 원래의 이름을 찾아내어 오름에 흐르는 역사와 전통을 밝혀내는 일, 그리고 그 가치를 보존해 내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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