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당시 50명 이상 '집단학살' 26곳서 자행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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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당시 50명 이상 '집단학살' 26곳서 자행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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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4.3보고서 발표 17년만에 '제주4.3 추가진상보고서' 발간
165개 마을 피해실태 규명...행불‧수형인‧예비검속 피해도 수록
사진=제주4.3평화재단
사진=제주4.3평화재단

제주4.3당시 한 장소에서 50명 이상의 양민이 희생당한 집단적 학살은 26곳에서 자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지난 2003년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표된 후 17년 만에 추가진상조사의 첫 결실인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번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마을별 피해실태 △집단학살 사건 △수형인 행방불명 피해실태 △예비검속 피해실태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 발굴 △교육계 피해실태 △군인‧경찰‧우익단체 피해실태 등을 다룬 770쪽의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4‧3 당시 기준으로 12개 읍면 165개 마을(리)의 피해상황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여 지난해 12월 기준 희생자로 확정된 1만4442명에 대해 가해자 구분, 피해 형태, 재판유형, 유해수습 여부 등에 따라 모두 18개 유형으로 분류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추가조사과정에서 확인된 미신고 희생자도 1200여명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마을별 피해 확인과정에서 한 장소에서 50명 이상 피해를 당한 '집단학살 사건'은 전도에서 26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에 기술된 토벌대에 의한 집단학살의 장소와 피해규모를 보면 △북촌초등학교에서 자행된 북촌리 주민 학살(299명) △함덕백사장·서우봉 학살터(281명) △정방폭포 학살터(235명) △표선백사장 학살터(234명) △성산포 터진목 학살터(213명) △도두리 동박곶홈 집단학살(183명) △봉개리.용강리 대토벌(151명) △조천지서앞 집단학살(126명) 등이다.

또 △조천면 자수사건('박성내' 학살사건, 96명) △표선면 버들못 집단학살(92명) △모슬봉 탄약고터(대정고등학교 옆 밭) 집단학살(78명) △신엄리 자운당 집단학살(76명) △구좌면 연두망 집단학살(74명) △동명리 신갱이서들(마모루동산) 집단학살(72명) △중문리 신사터(현 중문성당) 집단학살(71명) △외도지서 서쪽 밭 집단학살(71명) △도령모루 집단학살(69명) △도두리 궤동산 집단학살(65명) △대림리 붉은굴(봉근굴) 집단학살(58명) △고산리 천주교회 인근 밭 집단학살(56명) 등의 사건실체 및 피해상황 등도 확인됐다.

북촌초 주민학살 등은 이미 4.3진상규명 과정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사건들인데, 조천면 자수사건 등에서도 당시 잔혹했던 양민 학살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1948년 12월21일 조천면 자수 사건에서는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토벌대의 말을 믿고 군 주둔지인 함덕초등학교로 찾아온 청년 96명을 제주시 아라동 하천 '박성내'로 끌고가 총살한 뒤 휘발유를 뿌려 불태우는 만행이 자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진압군은 "과거 조금이라도 잘못한 사람은 자수하라. 자수하면 살려주지만 나중에 발각되면 총살을 면하지 못한다"고 협박했고, 겁에 질린 많은 주민들이 자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해방직후 건국준비위원회나 인민위원회에서 활동, 1947년 3.1절 발포사건에 항의해 시위를 한 사실 등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49년 12월 발생한 도두리 동박곶홈 집단학살 사건은 소개 온 노형리 주민 21명을 동박곶홈으로 끌고가 총살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도두지서 경찰들은 소개민들 중 가족이 한 명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끌고 가 동박곶홈에서 총살시켰는데, 이들은 총살 현장을  쥔들에게 공개시키고 총살 당시 박수를 치도록 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행방불명 희생자 피해 조사결과 4‧3 행불 희생자는 현재 4‧3위원회가 확정한 3610명 보다 645명이 많은 4255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추가진상보고서는 이에 대해 '다수의 유해수습을 하지 못한 희생자가 사망 희생자로 신고돼 처리된 사례가 많았다'고 기술했다.

재단은 이번 조사에서 집단학살 사건 피해자의 신원을 일일이 밝혀냈고, 단일사건 피해자가 50명 미만인 경우에도 동일한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학살극이 벌어졌다면 이 범주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추가진상조사에서 2261명에 이르는 수형인 행방불명 피해실태도 중점적으로 규명됐는데, 특히 경인지역, 호남지역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수형인 행방불명 희생자들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발생된 예비검속 피해 조사에서 희생자 566명의 신원을 확인했고, 이 가운데 유해발굴 과정에서 40명, 구금중이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희생된 13명 등 모두 53명의 행적만 확인됐을 뿐 513명의 신원과 행적은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교육계 4.3 피해는 교원 271명, 학생 429명 등 총 700명의 인적피해와 93개 학교의 교육시설 및 학교운영 손실 등의 물적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경.우익단체 4.3 피해는 군인 162명, 경찰 289명, 우익단체원 640명 등 모두 1,091명으로 파악됐는데, 이는 2003년의 보고서에서 밝힌 1,051명(군인 180명, 경찰 232명, 우익단체 639명)에 비해 군인은 줄어든 반면 경찰 피해자는 다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추가진상보고서에는 피해유형을 세밀하게 분석한 198개에 이르는 많은 도표가 선보였다. 또 집단학살 사건을 포함한 5550명의 피해자 실명을 일일이 싣고 있는데 책 말미에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찾아보기'(색인)를 새겨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4‧3위원회가 현재까지 확정한 4‧3희생자 1만4442명의 통계는 본적지 중심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사건 당시 거주지 중심으로 재분류했다. 본적지로 분류했을 때, 피해지역과 사건 희생자가 서로 갈리는 등 피해실태 파악에 오류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가장 피해가 많았던 노형리 희생자는 종전 544명에서 538명으로, 북촌리는 419명에서 446명으로, 가시리는 407명에서 421명으로 재분류됐다. 그동안 본적지 별로 만들어졌던 '제주도 마을별 4‧3희생자 분포지도'도 추가진상보고서에선 거주지 중심으로 새롭게 작성, 수록됐다.

아울러 4‧3시기 사진과 정부의 진상보고서 발간 이후 진행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관련 사진을 중심으로 화보를 엮었다.

2003년 발간된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가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총론적 성격의 보고서라면, 이번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각론적 성격으로 구체적 피해실태 파악을 통해 4.3의 진상규명을 심화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녔다. 진상조사보고서가 뼈대라면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그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으로 평가될 수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4‧3특별법에 근거해 추가진상조사의 업무를 맡게 되자 2012년 추가진상조사단(단장 박찬식 박사)을 구성해 2016년까지 마을별 피해실태와 분야별 피해실태 조사활동을 벌였다. 

이어 2018년 10월 재단 내 조사연구실이 신설되자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집필팀(팀장 양정심 박사)을 구성, 기존의 조사내용에 대한 보완 작업을 거쳐 이번에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제1권을 발간하게 됐다. 이 보고서를 현대사 전문학자 서중석 교수(성균관대 명예교수)가 감수했다.

재단 조정희 조사연구실장은 "이번에 다루지 못했던 미국의 역할과 책임문제, 중부권과 영남권 형무소의 수형인 문제, 재외동포와 종교계 피해실태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추가진상조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이런 문제를 담아낼 제2권, 제3권의 보고서를 계속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격려사를 통해 "4‧3평화기념관에는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뜻을 담은 비문 없는 비석이 있는데, 이번 추가진상보고서가 그 백비를 채워가는 중요한 과정이 되리라 믿고 싶다"고 밝혔다.

원희룡 도지사도 격려사에서 "이번 추가진상보고서는 4‧3의 진실을 규명하고 역사를 바로세우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며,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에도 크게 기여하리라고 믿는다"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제1장 추가진상조사 개요, 제2장 마을별 피해실태, 제3장 집단학살 사건, 제4장 수형인 행방불명 피해실태, 제5장 1950년 예비검속 피해실태, 제6장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발굴, 제7장 교육계 피해실태, 제8장 군인.경찰.우익단체 피해실태, 제9장 결론으로 구성됐다.

제2장 마을별 피해실태는 4.3 당시 기준 12개 읍면 165개 마을(리)의 4.3피해실태를 구체화하기 위해 보고서 발간 시점인 2019년 12월 기준 4.3위원회로부터 심의.결정된 4.3희생자 총 1만4442명의 희생자 신고자료를 모두 조사해 인명피해 사실을 분석했다. 사망자, 행방불명자, 수형자, 후유장애자의 유형별 분류를 가해자 구분, 재판유형, 피해 형태, 시신수습 여부 등에 따라 18개 유형으로 세분화함으로써 4.3의 피해실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4.3위원회에 신고되지 않은 미신고 희생자를 함께 조사해 사건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제3장 집단학살 사건에서는 각 사건별 학살일자와 학살장소를 중심으로 50인 이상 주민이 희생된 총 26개 사건을 대규모 집단학살 사건으로 선정해 정리했고, 학살일자와 장소에 따른 희생자의 신원을 함께 밝혀 집단학살사건의 실상과 규모 등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했다.

제4장 수형인 행방불명 피해실태에서는 4,255명의 행방불명 희생자 중 2,261명에 해당하는 수형인 행방불명 피해실태를 중점적으로 규명했다. 특히 진상조사보고서에서 미진했던 경인지역(서대문, 마포, 인천, 부천) 형무소, 호남지역(목포, 광주, 전주)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수형인 행방불명 희생자들의 진상을 규명하고, 수형인 관련 사법적 판단을 추가했다.

제5장 1950년 예비검속 피해실태는 4.3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1만4442명 중 예비검속 희생자 총 549명의 피해실태를 중점적으로 규명했다. 미신고 희생자 17명을 포함해 예비검속 사건의 희생자 총 566명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이 중 제주국제공항 유해발굴 결과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40명, 구금 중 사망하거나 이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희생자는 13명이었다. 제주경찰서 및 성산포경찰서 관내 예비검속자에 대한 학살장소 및 희생 규모는 추가진상조사의 과제로 남겨졌다.

제6장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발굴은 2006년 5월 화북천 인근 밭 발굴부터 2018년 제주국제공항 등에 대한 발굴 결과를 정리했다. 모두 405구의 유해가 발굴됐으며, 2019년 12월 현재 발굴 유해 중 133구의 신원이 확인됐다. 4.3행방불명 희생자 암매장지에 대한 발굴 및 발굴 유해에 대한 지속적인 신원확인 역시 추가진상조사의 과제로 남겨졌다.

제7장 교육계 4.3피해실태는 기존의 교육계 보고서와 마을별 피해실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인적피해를 정리했다. 교원 271명, 학생 429명 총 700명의 인적피해와 총 93개 학교의 교육시설 피해와 학교운영 피해 등 물적피해를 파악, 피해자 실명과 학교 피해실태를 도표로 정리했다.

제8장 군.경.우익단체 4.3피해실태는 군인 162명, 경찰 289명, 우익단체원 640명 등 총 1,091명의 4.3 국가유공자에 대한 희생시기, 희생장소, 희생유형 등 구체적인 피해실태를 파악했고, 기존 보고서와는 다른 통계를 제시했다.

제9장 결론에서는 추가진상조사보고서가 희생자 추가신고에 따라 조사 대상 범위를 2019년 12월 기준 1만4442명 희생자로 확장해 분석한 피해실태 결과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행방불명인 조사, 유해발굴과 신원확인, 미국의 역할 규명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를 남은 과제로 제기했다. 또한 진압작전에 대한 지휘체계 규명과 4.3의 정명(正名) 찾기에 대한 문제도 계속 검토돼야 할 과제로 설정했다.<헤드라인제주>

제주4.3사건 추가진상보고서. ⓒ헤드라인제주
제주4.3사건 추가진상보고서.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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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딜살리는서포터 2021-03-29 08:49:54 | 59.***.***.187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