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 장애인 접근권, 현실의 벽 여전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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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 장애인 접근권, 현실의 벽 여전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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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김지은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내가 일하는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바탕으로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장애인당사자 단체다. 따라서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퇴근 후 종종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없이 동료들끼리 저녁 식사를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겪는 불편함이 있다.

하루는 저녁 식사를 위해 가까운 곳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갔다. 음식점에 도착하여 차를 주차하려고 보니 장애인 주차 구역이 없었다. 그래서 더 멀지만 장애인 주차 칸이 있는 다른 구역의 주차장에 가서 주차해야 했다.

문제는 그다음에도 계속되었다. 차에서 내려 음식점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음식점 입구에 계단이 있는 것이다. 계단이 있는 게 왜 문제일까 싶겠지만 계단만 있는 경우에는 휠체어 이용자가 진입할 수 없기 때문에 경사로가 설치되어야 한다. 어찌어찌 힘들게 들어간 음식점 안에서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다.

음식점 내부에 있는 화장실의 크기가 휠체어가 들어가기엔 턱없이 좁은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직원이 이용 가능한 다른 건물의 화장실을 찾아다녀야 했다.

휠체어를 타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일반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좁은 입구, 수많은 계단, 높은 세면대, 거리가 먼 변기 등 이 모든 요소가 불편함을 넘어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소이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에 관한 기준을 제시해주는 법률이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이 그것이다.

이 법률의 목적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이들의 사회활동 참여와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장애인등편의법 제7조에서 정하는 편의시설을 설치하여야 하는 대상은 공원,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공동주택, 통신시설, 그 밖에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하여 편의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있는 건물·시설이다.

장애인등편의법은 장애인 등의 통행이 가능한 접근로,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포함한 20여개의 편의시설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장애인 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의 경우 설치장소 및 크기, 소변기와 대변기의 위치과 규격에서부터 바닥면의 재질과 마감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세한 사항들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시설주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임산부 등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이러한 사항들을 지켜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렇다면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이 정하고 있는 세부 기준은 어떻게 될까? 우선 장애인 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은 장애인 등의 접근이 가능한 통로에 연결하여 설치하여야 한다. 즉 휠체어의 접근이 가능한 통로에 연결하여 설치해야 하는 것이다. 장애인용 변기와 세면대도 마찬가지로 출입구(문)과 가까운 위치에 설치하여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 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의 출입문 통과유효폭은 0.9m 이상이 되어야 한다.

또한 대변기 사용 시 휠체어의 충분한 활동공간을 보장하기 위해서 대변기 유효바닥면적의 폭도 정해놓고 있는데, 건물을 신축하는 경우에는 폭 1.6m 이상, 깊이 2.0m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 특히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도록 대변기 전면 공간을 폭과 깊이 모두 1.4m 이상 확보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를 포함한 많은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 건물들이 많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라고는 하지만 계단이 있거나 높은 세면대가 있는 화장실도 많다. 또한, 공공시설이지만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황당한 곳도 있고,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있더라도 창고로 쓰거나 문을 잠가 놓는 경우도 있다.

편리하게 자동문을 만들어 놓은 곳마저 열림 버튼 혹은 닫힘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화장실 내부 전등에 불이 켜지지 않는 곳도 있었다. 이렇게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으면 시설을 잘 설치해놨어도 사실상 이용자가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처럼 장애인의 일상은 비장애인이 느낄 수 없는 불편함이 곳곳에 가득하다. 따라서 신체적 활동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법적 기준에 맞는 시설 개선을 통해 그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편의시설을 많이 구축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김지은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헤드라인제주
김지은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헤드라인제주

밥 한 끼 메뉴 선택에 있어서도 장애인들은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수많은 것들을 미리 확인하고 결정해야 한다. 주변에 수많은 식당이 있음에도 선택의 폭이 현저히 좁은 이유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제 피부로 느끼는 삶의 조건과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이런 차이를 일상 속에서 체감하다 보니 좀 더 많은 사람이 장애인 인권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들이 미흡한지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한다. <김지은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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