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채소 마늘, 양파, 쪽파 제주 재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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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채소 마늘, 양파, 쪽파 제주 재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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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37) 재배작물 도입의 역사

인경 채소(鱗莖菜蔬)는 비늘줄기를 이용 대상으로 하는 채소류로 대표적으로 마늘, 양파, 쪽파, 아스파라거스, 염교, 달래, 리크 등의 채소를 말한다. 이중 제주에서 재배되는 주요 인경채소는 마늘, 양파, 쪽파 등이다.

마늘은 백합과 파속에 속하는 인경채소로서 학명은 Allium sativum L.이며, 영명은 Garlic, 한명(漢名)은 대산(大蒜) 또는 호(葫)라 한다.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로 추측되며 우리나라에도 산마늘이 있었는데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마늘은 기원전 2세기경 한나라의 장건이 호지(서역)에서 마늘(蒜)의 큰 것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마늘에 대한 역사적 기록으로는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가 피라밋을 건설하면서 이에 종사한 노동자들에게 마늘과 양파, 무 등을 먹이는데 소요되는 경비기록을 피라밋 벽에 기록으로 남겼으며 또한 오늘날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마늘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 곰과 호랑이가 환웅께 사람으로 환생하게 해 달라고 빌었더니 환웅께서 신령스러운 풀인 마늘 20통과 쑥 한자루를 내리면서 "이것은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호랑이는 이를 지키지 못했으나 곰은 그대로 지켜서 21일 만에 웅녀로 환생했다는 건국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마늘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식품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입추(立秋) 후 해일(亥日)에 마늘밭에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부터 마늘이 이미 약용, 식용식물로 우대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527년에 최세진이 편찬한 훈몽자회에서는 산(蒜, 胡蒜)은 마늘, 소산(小蒜)은 달래라하였고, 1613년에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에서는 대산(大蒜)은 마늘, 소산(小蒜)은 족지, 야산(野蒜)은 달랑괴라 하였다. 국어사전에 족지는 산달래라고 하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제주에서 마늘은 전통적으로 재배되어 왔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재배가 시작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1953년 100ha 넘게 재배되었으며 특히 1970년대 이전에는 경제작물이 아닌 김장을 위한 자급용 생산수요에 초점을 맞춰 재배 되었다. 특히 다른 품종에 비해 제주의 환경에 적응 하여 유지된 지역 생태종으로 ‘제주재래종’이 아직까지 재배되어 지고 있으며 1979년 상해조생 마늘을 시험재배로 도입되었으며 제주재래종 보다 수량이 높아 1981년 중국에서 상해조생 마늘을 들여와 마늘주산지 종자갱신 품종으로 정착되었으며 지금까지 상해조생마늘을 남도마늘로 명칭을 바꿔 재배되고 있으며 비닐피복재배가 시작되면서 재배면적이 눌어 1970년에는 200ha, 2015년에는 2,171ha 재배되어 귤, 무 다음 많은 서부지역의 중요한 농업 소득원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제주에서는 월동채소 과잉생산 억제를 위한 핵심키워드는 마늘 적정면적 유지이다.

또한 최근 중국산 마늘 수입, 덜 매운 마늘을 소비추세의 변화로 다양한 용도의 마늘 재배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인경채소(마늘, 양파, 쪽파 등) 재배역사
마늘재배 모습(왼쪽)과 양파재배 모습

양파는 마늘과 함께 재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식물의 하나이다. 양파가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재배되고 있는 이유는 양파의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지는데 양파는 타 작물에 비해 잘 부패되지 않고 수송이 용이하며 다양한 토양과 기후에서 자라기 쉽고 또한 건조할 수 있어서 저장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양파는 기원전 5천년 이전에 프르시아에서 일종의 부적으로 쓰여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기원전 4천년에 고대이집트에서는 일반적인 식품으로 그리고 영원한 불멸의 의미로 장례식 제물, 미이라를 만들 때 같이 사용하였다는 흔적이 분묘의 벽화 및 미이라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7∼8세기부터 그리스에서도 재배되었다고 하며, 기원전 6세기부터 인도에서는 의학서에 양파가 이뇨제, 소화촉진, 심장, 눈, 관절등에 좋은 약제라고 표시되어 있다.

기원전 5세기부터 로마시대에도 재배하여 섭취하였고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에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1세기에 그리스에서는 올림픽 게임 운동선수들의 근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양파를 이용했는데 생양파, 쥬스등으로 복용하였으며, 몸에도 발랐다고 한다. 양파는 중세들어 유럽에 널리 전파 되었는데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포함한 남부 유럽에서는 매운 맛이 적은 단 양파 위주로 분화 발달하고,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등을 포함한 동부 유럽에서는 매운맛이 강한 매운양파가 분화 발달하였다.

러시아에는 12∼13세기에, 미국에는 16세기 이후에 매운 양파와 단 양파가 전파되면서 품종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세계적인 작물로 각광받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중동과의 교역도 빈번했던 시기인 당나라 초기에 중동이나 인도에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19세기부터 미국에서 들어온 황색종이 들어오면서 재배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개화기에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파는 중국에서는 후충, 일본에서는 다마네기로 불리며 우리 나라에서는 일본식으로 옥파 또는 모양에 따라 둥근파로 불리다가 서양에서 들어온 파라는 뜻으로 양파로 호칭하고 있다. 학술적으로 양파는 백합과 파속에 속하는 식물로서 학명이 Allium cepa 이다. 양파는 현재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는 양파의 원산지는 아직 야생종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원산지는 알 수 없으나 북.서인도, 아프가니스탄, 타지크, 우즈베키스탄 및 서부 천산 산맥에 걸치는 중앙아시아 중심 지역 설과 또 다른 하나는 근동, 그리스, 이탈리아, 이집트 등 지중해 지역 설이 있다. 그런데 중앙아시아 중심지역에 포함되는 북.서인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천신(천산) 서부지역에서는 양파의 유사종인 A. pskemense, A. vabilovi 등이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양파재배는 조선시대 말 미국과 일본에서 도입 재배되기 시작하였으며, 제주도에는 1930년대에 처음 들여와 1953년 19.4ha, 107,670관(약 403톤)을 생산한 기록이 있다. 이후 재배면적이 늘어나 곽지, 한경을 중심으로 서부지역은 조생양파, 구좌 김녕을 중심으로 동부지역은 만생양파 주산지로 정착되었다. 2015년 641ha에서 42,001톤이 생산되었으며, 조수입 330억 원으로 매우 중요한 채소작물로 성장 했다. 1950∼60년대 전체 수요량의 90% 가까이를 일본에서 종자를 수입하여 재배하였으며 1970년대 들어 양파의 4월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고소득 작물이 되었다. 그러나 200ha 정도일 때는 고가 출하가 되었으나, 400∼500ha로 면적이 확대되는 해에는 생산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쪽파는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원산지는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아시아의 여러 지역, 이집트, 프랑스 등에서 유사한 계통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으로부터 1천 5백년전 중국에서 전해졌다. 제주에도 오래전부터 재배되었다.

현재 구좌읍 등 동부지역은 종자용으로 재배하여 국내 쪽파 종자의 70% 이상을 공급하고 있으며, 서부지역인 한림읍, 애월읍과 삼양동 지역의 잎쪽파는 겨울철 우리나라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639ha 면적에 10,937톤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중 약 6ha는 시설재배이다. 품종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970년대 말 삼양동에서 재배되었던 것이 확대 되어 지금까지 재배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0년대 노지재배, 1980년대 이후 비닐 피복 재배, 현재는 단경기 출하용으로 하우스에서 재배되고 있다. 현재 겨울철 출하시기에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하여 망피복에 의한 터널재배가 이루어 지고 있다.

인경채소의 한 종류인 아스파라거스는 우리나라에서 원예시험장 등지에서 1966년 시험재배를 시작으로 재배가 시작되었으며 1968년 700ha에 이르렀으나 점차 감소하여 1978년에 90ha로 감소했다. 제주도에서 첫 재배는 1967년 수출작목 육성을 위해 재배한 것이 처음이었으며, 최근에는 관광객 등 도시 소비자 공급을 위해 제주시 동지역을 중심으로 몇 농가가 재배하고 있다. 확산세는 그리 크지 않고 일부 농가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 참고자료: 남인희(198)5, <제주농업의 백년>;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2016), <제주농촌진흥 60년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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