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잡곡류 재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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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잡곡류 재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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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35) 재배작물 도입의 역사

탐라 후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로서 고내리식 토기가 있다. 이 고내리 유적에서 토기와 함께 불에 탄 쌀, 보리, 콩이 발견되었다. 또한 탐라 개국 신화에서는 벽랑국에서 공주가 가지고 온 송아지, 망아지, 오곡 등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제주에서 처음 재배된 작물은 오곡을 비롯한 잡곡류일 것이다. 고려시대 제주의 농업은 보리, 조, 콩, 팥 농사가 주를 이루었다.

탐라지의 문헌에 따르면‘잇달아 삼 년을 갈아 먹으면 곡물 이삭이 실하지 않으니 부득이 또 새로운 땅을 개간해야 했다. 노동력은 배가 들어가나 소출이 적어 곤궁한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잡곡류가 제주민들의 주요 재배작물이었을 것이다.

잡곡류의 도입 역사를 작목별로 살펴보면 우선, 조는 기원전 2700년경 중국 신농(神農)의 오곡(五穀) 중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야생종을 순화하여 재배한 것으로 보이며, 중국, 우리 나라, 만주에서 중요한 곡식으로 오랜 재배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유럽동남부, 아프리카북부, 아시아전역, 북남미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조는 우리나라에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제주 에서도 거의 같은 시대에 재배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좁쌀이란 단어는 곧 쌀이 부족하던 시대의 쌀을 의미할 정도로 벼와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 재배되던 중요한 식량작물이었다.

쌀이 거의 생산되지 않던 제주에서도 토양이 척박하여 보리도 재배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조가 주 식량작물로 이용되었으며 특히 술을 빚는 원료로 주로 좁쌀을 이용하였는데 오메기술을 관혼상제 시 사용하고 오메기떡을 만드는 등 제주도민들에게는 애환이 깃든 작물이다. 제주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조는 맥류 다음가는 중요한 식량작물로 재배되었는데 기록상 조 재배면적은 1913년 15,269ha, 1938년 30,417ha이였으나 1970년대 이후에 재배면적이 감소되었으며 1982년에는 505ha로 감소하였으며 현재 재배농가는 미미한 실정이다.

1960년대 조 재배 포장(왼쪽), 최근 조성된 오라동 메밀재배단지.
1960년대 조 재배 포장(왼쪽), 최근 조성된 오라동 메밀재배단지.

메밀은 동아시아 북부 및 중앙아시아, 바이칼호, 만주, 아무르강변 등이 원산지이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 서식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본래 함경도에서 주로 재배되었으나 현재는 강원도 봉평 지역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제주에서의 메밀은 제주 농경여신인 자청비가 지상으로 내려올 때 오곡을 가지고 왔는데 잊어버리고 못 가지고 온 종자가 있어서 다시 가지고 온 것이 메밀이라고 신화에 등장하는 작물이다. 척박한 제주 토양의 구황작물로서의 역사, 출산 후 산모들이 먹는 음식 등 제주인의 삶과 함께 신화적, 역사적, 생활적 이야기를 갖고 있는 스토리가 있는 작물이기도 하다.

메밀은 예로부터 제주지역에서 중요한 식량작물로 재배하였으며 1938년 재배면적은 4,874㏊로 대두보다 많이 재배하였다. 1960년대 말까지도 제주에서는 부족한 식량의 자급자족을 위해 메밀은 중요한 식량 작물이었다. 1970년대 이후에 메밀 재배면적이 감소하였는데 1990년대 이전에 500ha 내외로 재배되다가 2005년에는 51ha까지 감소하였다.

그러나 최근 메밀에 대한 소비의 증가와 함께 제주지역에서는 월동채소 재배면적이 증가하면서 월동채소 뒷그루 작물로 메밀재배면적이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며 중산간 지역에 까지 재배면적이 확대되고 있어 재배면적 및 생산량이 전국 대비 36.5%(2015년 기준)로 전국에서 제일 많이 재배하고 있어 제주지역 메밀 생산은 명실상부한 전국 1위(생산량 전국 1위, 재배면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주메밀을 산업화할 수 있는 발전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현재 제주에서 생산되는 메밀은 원물 상태로 강원도 봉평으로 보내어 가공되어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최근 제주메밀 명품만들기 일환으로 생산에서부터 가공 유통까지 총망라한 제주메밀의 명성을 찾고 6차 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많은 노력들이 진행 되고 있다.

옥수수는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한 남아메리카 북부의 안데스산맥의 저지대나 멕시코가 원산지인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따라서 그 이름도 중국음의 위수수(玉蜀黍)에서 유래하여 한자의 우리식 발음인 옥수수가 되었고, 다시 지방에 따라 옥시기, 옥숙구, 옥수시, 옥쉬이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 밖에 강냉이, 강내이, 강내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옥수수는 과거 쌀이나 보리를 재배하지 못하는 산간지대에서 식량 대용으로 평야지에서는 간식용으로 극히 일부가 재배되었다. 1970년대 이후 축산업과 가공 산업의 발달로 한때 옥수수 수요량 증가와 함께 재배면적도 증가하였으나 이후 사료용 옥수수는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간식용으로 재배되는 단옥수수는 1970년대 초에 미국에서 육성한 품종들을 도입하여 품종비교시험을 통해 농가에 처음 재배되기 시작하였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찰옥수수의 품종개발 및 보급으로 찰옥수수 면적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제주에서는 1970년 이후 자가소비를 위한 간식용 옥수수 재배가 시작되었으며 일부 축산사료용 옥수수재배가 이루어졌다. 간식용 옥수수는 찰옥수수, 단옥수수 등으로 나뉘는데 1990년대 이후 애월읍 수산리를 중심으로 단옥수수 20ha정도 재배되고 있다. 2000년 이후에는 찰옥수수가 도입되면서 서부지역은 양배추 등 월동채소 후 작물로 2기작 재배가 이우어 졌으며 최근에는 구좌읍 일대의 당근과 성산읍 일대의 월동무를 재배한 후 뒷그루작물로서 연작장해와 소득이 낮은 문제점을 개선되는 방향으로 확대 될 것으로 예상 된다.

기장은 기원전부터 인류가 재배해왔던 식물 중의 하나로 비슷한 시기에 남코카서스와 중국에서 곡식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벼, 보리, 콩, 피와 함께 오곡의 하나로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식량작물 중의 한 작물이었다. 기장의 재배면적은 해방 전에는 함경도를 중심으로 15,000ha가 재배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후 면적이 계속 줄어들어 1970년에는 약 1,000ha 정도 재배가 되었고, 2000년도 이전 제주에서는 재배기록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재배면적이 적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겨울채소 뒷그루 및 토양개량용, 잡곡 소비 증가에 의해 기장 재배면적도 증가하여 2001년 50㏊, 2006년 897㏊, 2015년에는 2,500ha로 증가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기장은 재배기간이 짧고 친환경적으로 재배가 쉽기 때문에 농가에서 2기작 재배작목으로 선호하는 작물이 되었다. 2010년대 들어 찰옥수수와 더불어 월동채소 뒷그루 2기작으로 정착되고 있다.

수수는 벼목 볏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자 곡식의 일종으로. 중요한 식량자원인데, 쌀이나 밀이 흔해진 때부터는 잡곡으로 분류되어 수요가 많이 줄었다. 아프리카에서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왔으며 동아시아 일대로 퍼졌다. 중국에서는 고량이라는 말이 퍼지기 전까지는 '촉서'라고 칭했으며, 이는 중국에서 수수가 처음 전래된 지방이 촉나라 쪽임을 짐작케 해준다. 쌀 등에 비해 강수량이 적은 건조한 토지에서도 잘 자라므로 관개가 어려운 밭이나 가뭄이 들어 말라죽은 벼 대신 심는 대체작물로도 제주에서 재배 되었을 것으로 예상할수 있다.

중국어나 한자로는 고량(高粱)이라고 표기하며, 중국에서는 고량주의 주 원료로 사용된다. 제주지역에서 수수는 제주 재래종이 주로 재배되어 1984년 133ha까지 재배되다가 계속 감소되어 1995년 이후에는 거의 재배가 되지 않고 있다. 제주 재래종이 간장이 길어 바람에 잘 쓰러지고 수수 길이가 짧은 특성을 갖고 있어 단간종인 수수교잡종이 제주지역에 주로 보급 재배되고 있다.

잡곡류는 논토양이 부족한 제주지형 여건에 따라 건조지역에 강한 밭농사의 주요 농작물로 선택되어져 제주농업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여왔다. 탐라시대부터 근현대시기 까지 시대적인 변천에 따라 발전하여 왔는데 최근 1960년대까지도 조와 메밀 등 주요 잡곡들은 제주민들의 중요한 식량작물 및 구황작물로 재배되어 왔던 애환이 서려있다. 또한 최근 잡곡류가 건강 기능식품으로 각광 받아 입부 잡곡은 최근 재배가 선호 되고 있으며 현대인들의 건강과 제주의 스토리로 이어나갈 소중한 작목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사회과학출판사(2012), <조선농업사(원시, 근대편)>;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제주농촌진흥 60년사>; 제주특별자치도(2019 )<농축산식품현황>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서부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원 등을 두루 거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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