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21) Ord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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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21) Ord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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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게 지나쳐서 내게는 “에이 씨! 너무 춥잖아!~”를 입에 달고 살게 하는 겨울.
그러나  이 겨울은 이제야 겨우 한 가운데 와있다.

삭막한 창문 밖에 측은한 표정을 하고 서 있는 목련나무의 가난한 가지를 보면서 목을 움츠리고는 부르르 떨었다.

“정말 춥다.... 호”
이불을 덮고 앉아 “공부해야지!”
야무진 다짐을 하고는 사전만큼 두꺼운 한문책을 몇 장 넘기며 달팽이가 꼬무락거리며 발자국을 그리는 것처럼 몇 번 긁적거리다 손안에 쥐었던 볼펜이 뻣뻣하게 뻗는 손가락사이로 자꾸 미끄러져 내린다.

그럴때 마다 “에이, 씨!...”
나도 모르게 선선한 냉기에 자꾸만 빳빳해지는 손가락을 노려보며 성을 낸다.
몇 자 적어보지도 못하고 앉아 정말 성이 나서 책을 팽개치게 되면 하루 종일을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내일이 되어버리는 요즘.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어야 해!”
또 혼자 앉아 한 대 때리고 싶어지는 내 몸을 변명하느라 혼자 끓고 있는 빨간 심장을 달래게 된다.

눈과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이불을 누르듯, 눈물 나게 그리운 청 빛의 눈부신 하늘을 가려놓은 어느 겨울 한낮의 망중한 중에 ‘폴랑폴랑...’ 하얀 꽃잎들이 춤을 추고 있다.

“와! 눈이다!...”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커지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내가 스스로도 귀엽다.

그리고
한참동안을 눈 구경으로 눈이 호강을 한다.

눈이 와도 이젠 걱정이 없어서 그런가?...
조금 전까지도 저 혼자 성을 내며 꿍얼거리던 입가가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예전엔 눈이 내리면
비가 내리면
혼자 앉아 눈이 쌓인 마당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강아지와 동생들, 아니 눈이 내려도 비가 내려도 상관없는 평범함이 부럽기도, 질투가 나기도 했었다.

늘 마당을 한참이나 멀리 가야만 화장실을 쓸 수 있던 때에
그 닷 멀지도 않을 그 짧은 거리를 터주기 위해 어머니는 눈이 내리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눈을 밀어치우고 물을 뿌려가며 빗자루로 박박 눈을 쓸어내고 내게 평평한 길을 터주느라 고생을 하셨지만 그렇게 어머니가 만들어준 길을 걸었던 적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발을 딛자마자 미끌미끌 미끄러지는 발을 더 이상은 앞으로 디뎌 갈 수가 없어 결국엔 어머니의 수고스러움을 뒤로 한 채, 아주 고전적인 방법인 요강을 택해 부엌 한옆에 앉아 화장실을 대신해야 했었다.

남들처럼 눈을 밟고 뛰어다닐 수 없는 게.
남들처럼 우산을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동생들처럼 우당탕, 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다는 것들이.
왜 그렇게 속이 상하고 서운했었는지.

한겨울이면
물 한 컵 내손으로 들어 마실 수 없는 꽁꽁 얼어버리는 내 손이
음료수 병뚜껑하나 열지 못하는 힘없는 내 손을 뚝, 떼어 버리고 싶기도 했을 만큼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서러웠는지
스스로 할 수없는 것들에 길이 들어가면서도 가끔은 정말 나에게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

하지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란이 조금은 귀찮아지는 나이가 되어버린 오늘

남들보다 조금 많이 불편하고, 뛰어다니지 못하고, 내 손으로 시원한 음료수 뚜껑 하나 쉽게 열어 마음껏 들이킬 기력 없는 몸으로 살면서 하루는 화나고, 하루는 체념하고, 또 하루는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대견해서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계절의 큰 선물인 눈꽃이 팔랑팔랑 허공을 날아다니다 베란다 유리창에 다가와 쿵, 하고 부딪혀서는 천재작가였다는 앤디워홀의 희한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포토그래픽 작품들처럼 자연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그 평범함 안에 혹, 나도 속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4시간이 일생인 하루살이도, 보름을 겨우 살기 위해 몇 년을 썩어가는 거름 안에 숨어 호흡을 고르는 굼벵이도, 겨우 형체만을 갖추고 40일 만에 조산을 하는 성냥개비만한 아기캥거루 역시 자연의 평범한 시간 안에서 기적과도 같은 삶을 살아간다.

몸이 불편하다는 것은 가끔 가슴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보다 나은 몸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질투와 시기의 독이 든 부러움 가득한 마음을 담아 보기도 하지만

내 것인
나의 것인
나만의 것인

나는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

비록 들리지 않는 귀와
비록 보이지 않는 눈과
비록 곧게 뻗어 바로 걸을 수 없는 다리에
비록 많은 이들과 다른 생각으로

건강하지 않고, 곧지 않으며, 비정상적인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의식 속 우리는

단지 들리지 않는 귀와
단지 보이지 않는 눈과
단지 곧게 뻗어 바로 걸을 수 없는 다리에
단지 많은 이들과 다른 생각일 뿐

비틀리는 육신으로도
바람처럼 흔들거리는 생각 안에서도

하루는 24개의 잘라진 조각으로
누구에게나 모두 공평하게 다가와 세상을 이끌게 한다.

우리는 ‘보통’이라 정의 내려진 이들의 사회적 의무 안에 묻혀 쓸려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 24개의 조각난 시간 속에서 함께 할 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것이 그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평범한 24시간이라는 특별한 사실.

<헤드라인제주>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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