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15)오늘도 무사히...
상태바
[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15)오늘도 무사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루 종일 다운이 되는 컴퓨터를 끌어안고 싸우느라 시간을 보내고 났더니 머리카락이 다 곤두서는 느낌이다.

사무실이라고 하지만 두어 사람만 말을 꺼내도 좁은 공간이라 마치 도떼기시장처럼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곳은 내가 일을 한다기보다 허름한 시장 한복판 좌판에 늘어진 물건들보다 더 돋보이는 목소리로 지나는 뜨내기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길들여지길 거부하는 이들이 상인들과 코를 맞대고 앉아 내어놓는 흥정시비에 구경을 나온 것 같다.

하루씩 길들여져 간다는 것은 어쩌면 하루를 벗어나고 싶은 도망의 길은 아닐까?

이제 일을 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는 지금
하루하루가 길들여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를 의지하기에는 나 자신 나약하고 심지 없는, 그래서 둥둥 물위를 떠다니는 물풀처럼 자꾸만 물살에 떠내려가고 있는 듯한, 두려움.

하루는 온 힘을 다해 악을 쓰는 듯이 이를 악물어본다.

그리고
하루는 그 무엇에도 나를 주고 싶지가 않아서 모른 척 눈 감고, 귀 닫고, 입 꼬옥~ 물고 시간을 꾸역꾸역 삼키며 보낸다.

그렇게 시간을 지내고 나면 내손과 내 가슴, 내 머리엔 보얗게 먼지가 앉아 곧 폐기 처분해야 할 물건처럼 너덜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는 한다.

오늘도 무사히...
오래 전, 어린 소년이 기도를 하는 그림귀퉁이에 새겨져 있던 그 글의 의미를 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의문을 품지도 않고 무심하게만 바라보았었지만,
언젠가부터 그 글의 의미는 깨치지 못하고 있지만 그 글귀를 나도 모르게 입가에 내뱉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된다.

무엇이 그리도 치열한 지
삶이 치열하다고 한다면 나 역시도 그렇다고 손을 들지만.
지금의 치열함은 솔직히 이유를 모를 때가 많다.

그리 치열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독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자꾸 독하라, 한다.
치열하게 나를 던져 서로가 깨지라 한다.

독하게 하는 것은 나에게 마지막이다.
치열하게 나를 부수는 것은 나에게 절망의 끝에 선 날에 할 최선의 것과 바뀐 차선이 되는 날에 올 선택이다.

그런 나에게 독한 것은 내 삶에 불이 꺼지는 날
행해질 하나뿐인 그것이 될 것이다.

나는 치열하지 않고...
나를 부수지 않고...

나를 간직하고 싶은 오늘...

<강윤미 /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