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14) 어떤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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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14) 어떤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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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지나고 하루가 다르게 서늘한 기운이 더해가는 시월.
사무실에 앉아 동동 들리는 다리가 퉁퉁 부어 피가 통하지 않아 힘도 실리지 않는 손을 주먹 쥐게 만들어 다리를 나도 모르게 두드리고 있던 한낮에 핸드폰이 파랗게 반짝거린다.

“예, 여보세요?”
“누나, 우리 학교 졸업식 할 거니까 그날은 다른 약속잡지 말고 꼭 옵써예!”
“응. 알안. 집에만 데려다 주면 간다. 하하하...”
나는 연락을 해온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장애인야간학교의 일을 맡아 하고 있는 녀석에게 어깃장 비슷하게 말을 하면서 쑥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얼버무려봤다.

 

▲ 사진은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열렸던 제3회 제주장애인야간학교 졸업식 <헤드라인제주 DB>

“그건, 우리가 알앙 헐 거라!...잊어불지나 마라... 알아수다. 오는 거우다, 예!"
하고는 덜컥, 전화를 끊어버리는 녀석.

장애인 야간학교의 졸업식이 벌써 돌아왔나 보다.

내가 졸업을 한 게 어제만 같은데
작년 이맘 때였나
내가 졸업을 한 게
해를 보내고 난 오늘, 나는 졸업을 한 선배로 초대를 받는다.

일을 마치고 찾아간 장애인야간학교의 졸업식장은 무척이나 분주하고 긴장된 시간이었다. 의외로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졸업을 축하해주고 있는 그 자리에 주인공은 당연히 졸업생들이었다. 많은 유명 인사들이 졸업식장을 찾아와 졸업생들을 축하해주고 있었고, 또 장애인 친구들이 축하해주기 위해 늦은 밤에도 자리를 지키며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자리에 정말 오랜만에 만나게 된 친구가 있었다. 내가 앉은 끝자리에서 잠시 시선을 돌리는 순간, 함께 눈이 마주친 그 친구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와! 왔어요!”
먼발치에서 반갑게 작은 손짓을 보이며 입으로만 웅얼거리는 나를 보면서 친구는 또 웃으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렇게 우리 둘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눴다.

 

▲ 제3회 장애인야간학교 졸업식에서 초등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졸업장을 받는 김형철씨 <헤드라인제주 DB>

졸업식 행사가 끝나고 다과회자리에 앉아 상 가득 차려진 떡이며, 과일 마실 거리들을 놓고 앉아 서로 오랜만에 보게 되는 친구들과 배부른 인사를 나누는 내 옆자리엔 과학수업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앉아있어서 나는 그 선생님과 오랜만에 인사를 나눴다. 제주대학교 졸업반인 선생님과는 이제 선후배관계가 됐지만 여전히 ‘선생님’이란 호칭이 입에 붙어 누나동생 하기로 하고서도 여전히 나는 ‘선생님!’하고 부르고 말았다.

“선생님! 잘 지내세요? 앗, 지내멘? 하하하...”
“네, 누나도 잘 지내고 계시죠? 참, 저 취직했어요. 누나.”
“어? 정말? 축하드려요! 한턱내요, 셈!”
“네, 나중에 월급타면 연락드릴게요. 한번 뭉쳐요, 우리.”
“네, 연락 꼭 주세요...”
여전히 말투가 고쳐지지 않아 쑥스러움에 나는 혀를 내밀게 된다.
‘아, 적응하기 어려운 호칭.’ 나는 속으로 혀를 차고 웃고 말았다.

그렇게 주변에 앉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졸업생들을 위한 축하제의 건배가 몇 번 오가고 나서 다과회가 마무리 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내 몇 걸음 밖에 아까 눈으로만 인사를 나눴던 친구가 휠체어에 앉은 채 덩그러니 혼자 주변이 치워지는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움직이는 사람에 치이지 않게 긴장한 채 살금 거리며 친구에게로 다가갔다.
“아! 여기 있었네. 우리 너무 오랜만이죠?”
“네. 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응. 잘 지내요. 참, 지난번에 진학하는 거 물어보던데, 입학원서 냈어요?”

“아... 니... 요...”
“대학 진학하는 거 아니었어요? 난 가는 줄 알았는데...”
“가고 싶은데요. 형편이 좀 안돼서요...”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눈가가 발갛게 되어버린다.
“부모님께 좀 도와달라고 해보면 안 될까요? 1학기만 조금 도와주시면 2학기부터는 장학금 받을 수 있을 텐데... 가고 싶잖아요? 친구들 진학하는 거 부럽지 않아요?”
“네. 부러워요. 근데, 형편이 좀 안돼요. 학비가 너무 많아서...”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진학준비를 하는 동안에 내가 겪었던 그 속상함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친구를 말끄러미 바라보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랬어요. 에휴... 속상하다.”
“왜요? 언니! 저, 괜찮아요.”
눈가를 발갛게 물들인 채 웃으려 애를 쓰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는 내 가슴도 같이 발갛게 감물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은 말을 할 수가 없어 난 친구의 휠체어 손잡이만 애꿎게 만지작거렸다.

 

집으로 데려다 줄 분과 함께 졸업식장을 떠나는 친구에게 다시 보자 말하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내내 그 친구의 감물 든 눈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장애인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다. 그 많은 것 중의 하나가 공부다. 누구나가 권리를 주장하고 의무를 강요하면서도 장애인에게만은 예외를 둔다. 그리고 장애인에게 환경은 선택을 강요한다. 자신의 수고로움을 감수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를...

누구나가 받을 수 있는 교육의 권리가 장애인에게만큼은 여전히 예외가 되는 지금.
2007년 시월의 제주장애인야간학교 졸업식은 장애인에게 그 권리가 예외가 되지 않을 날에 잊혀진 우리의 추억 속 낡은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기를 빌어본다.

<강윤미 /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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