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11)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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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11)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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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미 객원필진

“칠십 평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여... 아이고...”

여름의 끝으로 찾아오는 명절을 남겨둔 휴일.
평소라면 느긋하게 점심 겸 아침을 차려 아버지와 함께 먹는 시간인 일요일 낮.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게 실감이 나게 하늘에선 비가 아닌 폭포물이 쏟아지고 5분에 한 번씩 불안정하게 정전이 되면서 콘크리트로 지어진 커다란 몸집을 한 아파트가 마치 지푸라기로 지어진 초가마냥 들썩거리며 불안함에 웅성거리게 하고 있었다.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시내로 일을 나간 우리 집 막둥이가 12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전화를 해왔다.

“언니, 집에 가라고 방송하멘.”

태풍으로 매장들이 모두 문을 닫아거는 모양인지 집으로 가라고 한다는 전화를 들으면서 창밖을 바라보면 비가 아니라 물이 덩어리져 들이부어지고 있는 하늘이 있다.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고 있다는 말과 동시에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소리에 집에 있던 아버지와 동생들이 밖으로 뛰어나가고 난 뒤에 집안에 혼자 남아 있던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게 보이지도 않는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요란한 사이렌소리와 함께 문안으로 들어오는 동생들에게 막둥이의 전화얘기를 했다. 그리고 두 동생은 집을 나섰다.

30분쯤 지나 걱정을 못 이겨 전화를 하자 앞이 안보이고 물이 시내를 범람하고 있다며 가는 길이 더디다고 한다.

“조심해서 오래 걸려도 지대가 높은 곳으로 돌아서 가. 낮은 곳으로 가면 위험할지도 몰라.”
“응. 알안... 걱정 말고 있어. 엄마한테 계속 연락해보고...”
이렇게 태풍이 올라오는 데도 새벽밥을 후룩 냉수에 말아 한 모금 들이키고 어머니는 일을 가셨고 그런 어머니와 연락을 하려는 우리 형제는 통화가 안돼서 애가 타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조금 지나서 전화가 울렸다.

“언니. 차 시동이 꺼져부런... 그런데, 이... 물이 막 차안으로 들어와...”
막둥이동생의 전화목소리는 말과는 다르게 침착하고 어이가 없는지 웃음기까지 돌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듣던 난 가슴이 울렁거렸다.

전화기 앞에 코를 붙이고 앉아 어디쯤이냐? 몇 분에 한 번씩 동생들과 통화를 하며 안부를 확인하고 있던 나는 동생이 그저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목소리에 전화기를 귀에 대기 위해 한 팔로 전화기를 든 팔꿈치를 받치고 그 팔은 다시 몸에 받치고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던 손이 나도 모르게 떨렸다.

“지금 어디까지 완?...”
“응. 여기 화북초등학교 앞에... 앞에 차가 많아서 잠깐 세워신디...시동이 꺼져부런...”

“응. 나오지 말고 거기 있어. 아빠보고 한번 가보시라고 하크라.”
“아니. 아빠 보내지 마. 위험해. 밖으로 나오지 마라... 여기서 신고핸. 자동차보험회사에서 하는 콜센터에도 신고하고 경찰에도 연락핸... 아빠는 계시라고, 절대 나오시지 말게 해.”
동생은 아버지를 밖으로 나가게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심장이 펑펑 저 혼자 펌프질을 해대며 난리법석을 부렸다.
통화가 끝난 수화기를 가슴에 안고 앉아 난리법석을 부리고 있는 또 다른 녀석을 또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는 집안으로 온몸이 흠뻑 젖은 채 들어오시는 아버지께 전화로 들은 동생들의 안부를 망설임 반, 간절함 반으로 전하자 아버지께서는 낯빛이 하얗게 되셔서 차 열쇠를 찾아들고는 그대로 뛰쳐나가시고 말았다.

“집밖으로 나오지 마! 아빠 보내지 마!”
하던 동생의 외침은 내 입안에서 맴맴 돌며 가라앉아버린 채...

그리고

그렇게 집안에 남겨진 나는 혼자 앉아 전화기를 들고 동생들에게 한번...

연락이 닿지 않는 어머니에게 한번...

언니에게 한번...

그리고 동생들을 찾으러 나간 아버지에게 한 번씩 순서대로 번호를 쿡쿡... 눌러대며 애써 애타는 가슴을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아무 할 일이 없는 내가 단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단지 그것뿐 이었으니까...

그리고 하얗게 질린 채 뛰쳐나가셨던 아버지의 차를 타고 한 시간도 더 지나고 나서야 평소에도 내 손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무거운 철문이 철컥, 열리면서 동생들이 두려움과 안도감을 함께 묻힌 비 냄새를 가득 안고 들어섰다.

“아빠는?...”
비에 흠뻑 젖어 어기적거리며 들어오는 뒤로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내 가슴이 파닥파닥, 찢어지는 천막소리를 낸다.

“응. 차 세우고 오실 거...”
머리끝에 올라가 앉아 저 혼자 춤을 추어대며 촐랑거리던 심장이 그제야 스르륵... 하고 방바닥 아래로 가만히 내려와 앉았다.

수건을 찾아 몸을 털며 집안으로 들어선 동생이 물었다.
“엄마는?”
“응. 연락이 안 되멘... 신호는 가는데 안 받으셔... 전화기가 불통인가?...”
“엄마. 전화 잘 못 받을 때 많아. 계속해봐... 시외도로들 다 통제하는 거 같던데... 오지 말고 비 그칠 때까지 있었으면 좋겠는데...”

경찰과 주변의 도움으로 물에 잠긴 도로에 차는 그대로 둔 채 몸만 가까스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동생들은 몸을 씻을 새도 없이 어머니의 안부를 챙기느라 파랗게 식은 마음이 더 파랗게 두려움에 멍이 들어간다.

한참동안을 언니와 통화를 나누고 언니는 또 형부와 기나긴 통화를 나누고 형부는 또 어머니가 다니시는 현장사무실로 몇 다리나 건너건너 연락을 한 끝에 겨우 어머니의 무사함을 알게 되고 또 몇 번이나 끊기는 전화를 붙잡고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다시 시내로 들어오고 있다는 어머니를 다시 마중나간 아버지와 동생은 바람에 뿌리째 뽑혀 도로를 가로막은 나무를 헤치고 겨우 넘어온 어머니를 만나 천만다행으로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온가족이 모였다.

어머니가 돌아오시고 난 뒤로 태풍은 제주지역을 벗어났는지 그렇게 들이부어 대던 폭포수 같던 비도, 그렇게 휘몰아치던 바람도 마치 거짓인 듯이 말짱해져 낮 동안 지옥 같던 두려움이 새삼스럽게 민망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닌 듯, 태풍이 남기고 간 영향으로 전기가 끊기고, 수돗물도 끊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동생들이 가게로 달려가 사온 라면과 빵을 밥상에 펼쳐놓고 촛불을 밝히고 앉아 간단하게 요기를 하면서 우스개까지 나눠가며 서로가 무사한 것에 안도했다.

태풍이 지나간 지도 일주일도 훨씬 지난 오늘은 일 년 중에 가장 풍요로운 날, 추석이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풍요는 없었다.

주검이 발견된 가족도 있고, 삶의 터전을 잃어 삶이 막연해진 이들도 있으며 집을 잃고 임시거처에서 기관에서 지급되는 보잘것없는 것들로 명절의 설움을 더 크게 느끼는 이들도 주변엔 많다.

그래서 차마, 내 가족이 무사하고 내가 사는 터전이 안전하다고 오늘 기쁠 수가 없다.

다만,
어제처럼 다시 웃으며 다 같이 내일은 서로의 안부가 웃음으로 만날 수 있기만을 기원하게 된다.


<강윤미 /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항상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게 돼, 아랏벌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이게 합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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