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5) 시간을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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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5) 시간을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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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 맴, 맴... 
매에... 앰... 맴... ...

매미들이 짝을 애타게 찾아 외쳐대는 소리가 따가운 햇살을 벗 삼아 아파트 높다란 창을 타고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넘나든다.

타르륵, 틱... 틱...

드르륵, 틱, 틱, 틱...
신이 난 매미 녀석들과는 다르게 마루 한옆을 지키고 앉은 선풍기는 아까부터 감기 걸린 아이처럼 더운 숨을 자꾸만 불어댄다.

“저버니, 언니네 사다 준 약으로 어멍, 물레나 디려보카? 집이 드러시메...”
벽에 걸린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으며 어머니의 망설이던 한마디가 매미가 부르는 낯간지러운 사랑노래에 살며시 기대어 용기를 부른다. 

“응... 언니가 사다준 걸로 헙써... 저냑에랑 은아 오민...”
“에, 에... 요디영, 앞이만 허민 데난, 어멍양으로 허키여. 어떵 허는거앤 니가 고르라.”
수줍은 어머니의 말소리가 한여름 풋내 풍기며 땡그랗게 익어가는 어린 귤 알 마냥 비리다. 

“약, 두 개 이신 거.... 혼디 서껑, 얼레기로 빗으멍 볼르민 되긴 허는디...”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가는 꼬리 빗을 들어 치약처럼 생긴 염색약을 콩알만큼 덜어내 귀밑머리에 바르는 어머니의 손끝에는 여름의 설레인 열기가 묻어난다. 


머리를 길러서 핀을 꽂아보는 게 소원이던 어린 시절...
겨우, 눈이 덮일 만큼 앞머리가 자라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용케도 알고는

“윤미야. 머리 끊게...”
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앉은 평상위에 가지색 보자기와 재봉틀서랍에 누워있던 시커멓고 커다란 가위를 꺼내다 놔두고 돌아와 나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간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볕을 한 푼도 남김없이 받아 안아 한겨울 아궁이처럼 달구어진 마당 그늘 끝에 앉아 어머니가 둘러주는 보자기가 풀어지지 말라고 물려놓은 빨래집게를 노려보며 나는 떨리는 가슴을 보자기 안에 숨기곤 했다.

가슴이 떨렸다.
왜, ‘머리 끊게.’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떨리고 눈이 매워왔는지...

겨우,
눈가를 덮던 내 까만 머리카락이

사각, 사각...
아이의 눈물을 서럽게 등에 업은 체 떨어져 내린다.


“저착드레, 고개 해보라...”
사각, 사각...

내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누르고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리면 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내 귓가에서 눈물이 속삭이며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바보...’
사각...

‘머리 기르고 싶은데...’
사각, 사각...

‘핀, 꽂으면 눈 안 가리는데....’
사각...

‘...  ...’
사각, 사각, 사각....

“이번엔 이착페니...”
사각...
사각...

다시 내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누르고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돌리는 나의 입술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꼭 깨물어진다.

‘멍충이...’
사각...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엄마가 나가기 전에 핀 꽂으면 되는데...’
사각...

사각, 사각, 사각...
‘... ...’

“눈, 꼼아보라....”
까맣게 녹이 쓴 큰 가위와 듬성듬성 살이 엉성한 플라스틱 빗을 양손에 들고 까맣게 잘린 내 눈물자국을 손등에 덮은 체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눈이 무서웠던 나는 어머니의 ‘눈 꼼아보라.’ 하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질끈, 두 눈을 감아버리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의 손에 들린 머리빗이 이마를 몇 번 지나가고

다시,
커다란 가윗날이 이상한 쇠 냄새를 풍기면서 내 이마의 끝을 누르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각.....
“무사?...”
눈썹머리를 자르는 아이의 설움을 어머니가 보았던지.....

사각.... 사각.....
“싹싹 더운 디, 끄너베사주게.....”

사각.....
“어멍이, 집이만 이서 점시냐....”

사각....
“이녕냥으로 매날, 매날 머리 꼬마지크라?...” 

사각, 사각...
“더운디, 머리 질민, 니 바글바글 괴엉 어떵헐디...”

사각...
사각...
“경허민, 머리 몬딱, 깎아베사 허메...”

사각...

사각...

사각...

숨이 멈췄다.
아이의 눈물을 업고 떨어지던 머리카락이 파삭하게 허공에서 바람에 부딪혀 부서진다.


“다, 데신 게. 고마니 아자시라. 머리 꼬마불게.”
고개 숙인 내 눈에 목에 둘렀던 보자기를 벗겨내고 몸에 묻은 머리카락을 털어내는 어머니가 찌그러진 대야 가득 고인 물속에 까맣게 서 있다.

물이 가득 담긴 대야 앞에 무릎을 내리고 앉아 활짝 웃으며 어머니가 손을 대야에 담근 채 나를 올려다본다.

“씨원허게 잘, 끈어졌져... 꼽딱허다...”

물에 담긴 어머니의 손.
나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어머니의 웃음에 담긴 눈물.

10살.
여자아이의 울지 못하는 눈망울.
나의 울지 못한 눈물은 어머니의 활짝 웃는 미소입니다.

나의 머리카락에 업혀 떨어진 눈물은
그저...
10살 여자아이의 평범한 투정이고 응석이었습니다.

긴 머리 찰랑찰랑 올려 묶고
예쁜 꽃핀 하나 꽂고
또래의 친구들과
종알거리며 뛰어노는 일상이

10살.
제 몸 스스로 추스를 수 없는
여자아이의 어머니에게는
세상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10살.
제 몸 스스로 추스를 수 없는
여자아이의 소원은

삶을 진 어머니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소원이었습니다.


오늘.
10살, 제 몸 추스를 수 없던 나이든 아이와 눈 내린 귀밑머리의 어머니.

마주앉아
흐르는 시간을 가둬두지 못한 배부르지 않는 나이를 먹었습니다. 

어머니의 눈 내린 귀밑머리
어릴 적 내가 흘린 눈물이 얼어 내린 눈 같습니다.

소복이 눈 내린 어머니의 머리
까만 젊음의 시간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자식이 사다준 싸구려 염색약 한통
귀한 보약 먹기 아까워 아껴가며 먹듯
아껴, 아껴 콩알만큼 귀밑머리에 바릅니다. 
 

▲ 강윤미 객원필진


“아이고... 뎄져!!
마, 보라... 어떵허니?... 꼽닥허게 잘 데시녜, 이?... 어멍, 꼽닥허지?... 하하하...”
어머니의 귀밑머리 끝에 흐르던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울 속에서 웃고 있는 어머니의 웃음은...

10살.
여자아이의 까만 머리를 자르던 젊은 어머니의 등위에 쏟아지던 서러운 햇살입니다.

“아이고... 어멍, 10년은 젊어졌져! 새시집 가사허큰게... 와하하하...”


<강윤미 /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 필자인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다니다 휴학 중입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윤미 님을 잠시 만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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