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최종본 '제주4.3' 기술, '축소.왜곡'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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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최종본 '제주4.3' 기술, '축소.왜곡'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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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바꿨나...발발원인 등 '국가공권력 책임' 회피
내용 극 축약...진상규명 지연 '남북대치' 탓 돌려

교육부가 31일 국정 역사교과서의 최종본을 공개한 가운데, '제주4.3'과 관련한 역사적 기술내용은 여전히 축소.왜곡된 것으로 확인돼 제주사회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28일 공개한 국정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에 대해 한달간 의견수렴 및 편찬심의회 심의 등을 거쳐 수정 보완하고 최종본을 확정해 이날 공개했다.

이번 최종본에는 의견수렴 과정에서 제시된 국민검토 의견 829건과 국회, 언론, 교육청, 교원단체 등에서 제기한 수정의견 817건을 면밀히 검토해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310건, 고교 한국사에 450건을 각각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탐라의 채식이 일본과 비슷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 등은 수정했다고 밝혔다.

또 제주 4.3사건 관련 서술에서는 오류가 있었던 특별법의 명칭을 정정하는 한편, 제주 4.3평화공원에 안치되어 있는 희생자의 위패 관련 내용을 수록하는 등 내용을 추가 보완했다고 했다.

4.3사건 당시 무고한 희생자가 있었으며,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이 있었음을 유의점으로 제시함으로써 국민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종본을 확인한 결과, 제주4.3사건의 역사적 기술 내용은 당초 현장검토본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추가적인 부분을 살짝 '덧붙임' 정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4.3의 발발원인 및 책임, 진상규명이 늦어진 이유 등에 있어서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진실이 왜곡되거나 축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 중학교 '역사' 교과서 131쪽에 실린 내용.ⓒ헤드라인제주
우선 중학교 역사교과서 2편 131쪽에 실린 내용을 보면, 5.10 총선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주4.3사건이 발생한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가 무산되기도 하였으나 전국적으로 90%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라고 기술한 후, '제주4.3사건'을 각주로 처리하는 방법을 그대로 썼다.

주석을 통해 설명된 제주4.3사건에서는 종전 현장검토본의 내용인 "제주도에서는 1947년 3.1절 기념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한 데 이어서, 1948년 4월3일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1954년 9월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많이 희생되었다."라는 문구를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이어진 문구에 "1999년 12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이듬해 공포되었다. 특별법 시행 이후 조성된 제주4.3평화공원에는 1만4천여명의 희생자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라는 부분이 추가되었다.

▲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251쪽에 실린 내용.ⓒ헤드라인제주
고교 한국사 교과서 251쪽에 실린 내용에서도 비슷한 기조가 이어졌다.

'제주4.3사건과 여수.순천 10.19 사건'이란 작은 타이틀과 함께, 제주도에서는 1947년 3.1절 기념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1948년 4월3일에는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4년9월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제주도민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 이로인해 제주도에서는 총선거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했다."라고 기술했다.

이는 종전 현장검토본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다만 '제주4.3사건' 각주를 통해, "제주4.3사건의 진상은 남북한 대치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고, 공산주의자로 몰린 무고한 희생자들은 물론 그들의 유족까지 많은 피해를 당하였다. 이에 국회는 1999년 12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였고, 정부는 이듬해 공포하였다. 특별법 시행 이후 조성된 제주4.3평화공원에는 1만4천여명의 희생자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중.고교 국정교과서 최종본의 '제주4.3' 기술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제주4.3의 역사적 내용을 크게 축소.왜곡하고 있다. 

'1947년 3.1절 기념대회의 경찰 발포'와 '1948년 4월3일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인 것처럼 나열형으로 기술하고 있는 점이나, '남로당 무장봉기'가 일어남으로써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의 희생이 발생했다고 기술하는 것은 그 책임을 '남로당 무장봉기'에 전적으로 떠넘기는 행태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즉, 제주4.3의 발발원인이 '남로당의 무장봉기'이 전부인 것처럼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공권력의 과도한 무력진압에 의해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부분은 쏙 빠졌다.

검정교과서에서도 기술하고 있는 발발과정이나 역사적 의미, 진상규명 노력 등에 대한 설명도 언급되지 않았다.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의 가시적 성과로 제주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제주4.3추념식이 열리고 있으나, 이 부분도 내용에서 전면 제외됐다.

4.3발발원인 및 역사적 의미 등이 축소.왜곡된 것은 물론, 진상규명 노력의 내용을 추가했다고 하나 이 부분도 제2의 왜곡 논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정교과서에서는 제주4.3사건의 진상규명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남북한 대치 상황 속에서"라는 표현으로 남북관계로 인해 불가피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엉뚱 이유'를 내놓고 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저지른 양민학살의 내용을 은폐하기 위해 정부에서 조직적으로 숨겨왔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던 사실을 완전히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 검정교과서 8종 중 7종에서 4.3사건과 관련한 당시 사진이나 위령탑, 조형물 등이 첨부된 것과는 달리 이번 국정교과서에서는 사진도 첨부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교과서에 제주 4·3 사건이 기술된 페이지는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 및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선서 모습'만 사진으로 수록돼 있다.

결국 내용을 추가 보완했다는 최종본 또한 축소.왜곡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오히려 더 큰 반발과 '국정교과서 폐기' 요구가 크게 분출될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교육부는 당초 발표한 대로 현장적용을 2018년으로 1년 유예하고, 2018년부터 국정과 검정교과서를 함께 사용하는 국.검정 혼용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올해에는 '연구학교'로 지정된 학교에 한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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