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더미서 손에 걸린 건..." 4.3생존자 눈물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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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더미서 손에 걸린 건..." 4.3생존자 눈물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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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死).삶을 말하다'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 고완순.윤옥화 씨
"'사격중지' 한마디에 목숨부지"..."가족 죽었는데 유족 아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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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제15회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이 열린 가운데, 윤옥화 씨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오미란 기자
"그 땐 참 꿈 많던 소녀였는데, 4.3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린 것 같아서..."

4.3 68년, 질곡의 세월에 머리가 희어 버린 두 소녀는 그렇게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떨어진 사격중지 명령에, 빗 맞은 총알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던 두 소녀는 평생 마음 속에 쌓아 온 4.3의 기억을 떠올리며 연신 고개를 떨궜다.

30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

이 자리에서는 제주4.3연구소가 마련한 열 다섯 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이 열렸다. '학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사(死).삶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4.3 당시 대표적인 피해마을인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주민들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소설 '순이삼촌'의 무대이기도 한 북촌리는 4.3 당시인 1949년 1월 17일 군인 두 명이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사망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불러 모아 400여 채의 집을 불태우고, 300여 명을 학살하는 등 거센 탄압을 받아 온 지역이다.

이날 증언에는 북촌리 학살 현장에서 살아 남은 고완순 씨(77.여)와 윤옥화 씨(73.여)가 나섰다. 4.3 당시 이들의 나이는 불과 11살, 7살. 6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이들의 기억은 또렸했다.

◆ "'사격 중지!' 한마디에 살아나...운동장은 생사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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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제15회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이 열린 가운데, 4.3생존자 고완순 씨가 발언하고 있다. ⓒ오미란 기자
고완순 씨는 1939년 북촌리에서 태어나 4.3사건 당시에는 11살이었다. 아버지는 가족과 떨어져 한림에서 거주했고, 4.3 당시 고완순 씨는 어머니와 언니, 남동생과 함께 북촌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북촌리의 4.3은 밤에는 산에서 내려와 삐라를 붙이고, 낮에는 경찰들이 올라와 삐라를 떼라며 위협을 가하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매일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침이면 마을 청년들이 보초를 섰어요. 순경차가 오면 '검은기'를, 군인차가 오면 '노란기'를 들었어요. 깃발이 올라오면 방공호에 가서 숨어요. 무조건 잡아가니까요. 하루는 밤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는 걸 듣다 잠들었는데, 이틑날 보니 한 부부가 창에 찔려서 죽어 있었어요. 방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벽과 창호지에 피가 막 튀어있었어요."

그러던 1949년 1월 17일, 군인들은 북촌리 마을을 불태우며 주민들을 학교 운동장에 집결시켰다. 고 씨 가족이라고 예외일까. 주저하던 고 씨 가족은 새어 나가 버린 아기 울음소리에 여지 없이 운동장으로 끌려 나갔다.

운동장은 주민들로 꽉 차 있었다. 고 씨 가족은 학교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그 순간 참극이 벌어졌다. 군인들이 주민들을 향해 연달아 총을 쐈고, 그렇게 주민들은 하나둘 쓰러져 갔다.

놀란 주민들은 뒷걸음질 쳤지만, 이에 군인들은 기관총을 꺼내 들었다. 고 씨 가족은 죽지 않기 위해 엎드려 바닥을 기고, 또 기었다. 고 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거듭 눈물을 훔쳤다.

"군인들이 총으로 '타타타' 쏘아서 주민들을 죽였어요. 한 군인은 죽인 사람의 사지를 내던지기도 했어요. ... 우린 (총에) 안 맞으려고 돼지처럼 엎드려 기었어요. 뒤로 물러나다 보니 손에 뭐가 탁 걸리더라고요. 기면서 보니 아기가 (죽은 엄마) 배 위에서 젖을 먹으려고 하고 있었어요."

기관총 소리가 멎고, 군인들은 긴 나무 몽둥이를 들고 '따라오면 살려 주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30명씩 따라갔고, 고 씨 가족도 마지막 무렵 군인들을 따라갔다. 가 보니 시체는 널브러져 있고, 흙은 피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뒤에서는 '절거덕, 절거덕' 총 담는 소리가 들리고, 고 씨는 아무 생각 없이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고 했다. 그 순간 들린 "사격 중지!". 고 씨는 학살 중지 명령과 함께 살아 나왔다고 했다.

그녀는 "돌아가신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하다"고 운을 떼며, "입을 것 다 입고, 먹을 것 다 먹을 수 있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부럽다. 저는 참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소녀였는데, 4.3이 제 모든 걸 가져가 버린 것 같다"고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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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제15회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이 열린 가운데, 고윤옥 씨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오미란 기자

◆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죽었는데, 유족 아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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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제15회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이 열린 가운데, 4.3생존자 윤옥화 씨가 증언 도중 두 눈을 감고 울음을 참고 있다. ⓒ오미란 기자
1942년에 태어난 윤옥화 씨는 4.3 당시 7살이었다. 그녀는 "4.3 당시 어렸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족 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윤 씨의 어머니는 이북 청진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선원이었다. 형제로는 언니 둘에, 오빠와 여동생. 당시 윤 씨의 부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1949년 1월 17일, 군인들이 주민들을 운동장으로 집결시킨 그 날. 앞서 고윤옥 씨 가족과 마찬가지로 윤 씨 가족도 그 현장에 있었다.

당시 군인들은 남자들만 따로 부르기도 했는데, 윤 씨는 이 때 아버지가 총살당했다고 했다. 곧이어 윤 씨의 어머니, 언니도 군인들의 총격에 쓰러졌고, 동생도 총을 일곱 군데나 맞았다. 윤 씨는 동생도 아기구덕에서 3개월을 버티다 결국 죽었다고 했다.

어머니 옆에 서 있던 윤옥화 씨는 어깨 쪽에 총을 맞아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현재 윤 씨는 '좌측 견갑골 주위 총상 반흔'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4·3 후유장애자로 인정됐다.

이후 고아가 된 윤 씨를 보살펴 준 것은 큰아버지. 윤 씨의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하면서 윤 씨는 큰아버지 호적을 갖게 됐다.

북촌 학살 사건으로 네 식구를 잃은 윤 씨. 그러나 윤 씨는 아직까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호적이 큰아버지로 돼 있어 4.3 희생자 유족으로 분류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날 네 식구가 돌아가셨는데, 저도, 조카들도 아무런 보상을 못 받고 있어요. 4.3 희생자 유족이 아니기 때문에...그 때 당시에는 혼인신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 그동안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살아왔어요. 오늘부터는 물질을 나가야 하는데..."

▲ 30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제15회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이 열린 가운데, 윤옥화 씨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오미란 기자
제주4.3연구소 관계자는 "북촌리의 경우 4.3 희생자 조사가 잘 이뤄진 듯 하지만, 북촌리 주민들 자신은 그 날의 사건에 대해 아직도 자유롭게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오늘 이 자리는 '그 날의 나는 어디 있었다'는 것을 공개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4.3증언본풀이 마당은 수십년 동안 마음 속에 응어리졌던 억눌림을 해원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됐다"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증언자들이 발언에 나설 수 있을지 모른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증언본풀이마당을 계속 열어나가겠다"고 밝혔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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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주4.3연구소 주최 제15회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 ⓒ오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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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주4.3연구소 주최 제15회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 ⓒ오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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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주4.3연구소 주최 제15회 제주4.3증언본풀이 마당. ⓒ오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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