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는 지슬, 무는 놈삐! 이젠 '제주댁' 다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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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는 지슬, 무는 놈삐! 이젠 '제주댁' 다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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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맞아 제9회 전도외국인한국어말하기대회 열려
좌충우돌 제주적응기 웃음만발...유창한 말솜씨에 '깜짝'

"감자는 지슬, 양배추는 간낭, 무는 놈삐랜 곧는 거라. 잘 알아들어져시냐?"
"베트남에서는 아기가 자다 보채면 베개 밑에 칼을 놔두는데, 어느 날에는..."

제569돌 한글날을 맞은 9일 오후 제주웰컴센터는 '제9회 전도외국인한국어말하기대회'의 열기로 뜨거웠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서부터 몽골, 인도, 카자흐스탄,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전세계 10여개국의 외국인 30여명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쌓아 온 한국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0여년 동안 제주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이날 무대에서 한국어와 제주어, 제주문화를 접하면서 겪었던 일화를 속 시원히 털어놨다. 울기도, 웃기도 하며 옛 추억을 떠올리던 이들이었다.

9일 오후 제주웰컴센터에서 열린 '제9회 전도외국인한국어말하기대회'.<헤드라인제주>
리 소쿤티어리(Ly Sokuntheary)씨.<헤드라인제주>

캄보디아 출신으로 올해로 7년 째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리 소쿤티어리(Ly Sokuntheary)씨는 이날 '사투리가 편해요'라는 주제로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처음엔 한국말을 잘 몰라서 정말 답답했어요. 또 남편이 사투리를 섞어서 말을 하니까 더욱 이해하기가 힘들었어요. 한 번은 시어머니께서 저한테 '지슬 좀 가졍오라'고 하더라구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저는 시어머니께 칫솔을 갖다드렸어요. 어머니께서 어이없어 하시면서 많이 웃으셨어요. 그러다 갑자기 감자를 가져오시더니 '제주도 사투리로 감자를 지슬이라고 말한다'고 얘기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제주어로 감자를 뜻하는 '지슬'을 '칫솔'로 잘못 알아들어 엉뚱한 행동을 했던 것. 이에 시어머니께서 "감자는 지슬, 양배추는 간낭, 무는 놈삐랜 곧는 거라. 잘 알아들어져시냐?"라고 설명해주셨다고.

같이 밭일을 하던 동네주민들도 사투리가 심했다고 했다. 하다하다 제주말로 '삼춘'들이 자신에게 궁금한 걸 물어 와도 알아듣는 척 "네, 네"라고 대답했다던 그녀였다. 웃지못할 상황에 관객석은 웃음보가 터졌다.

리 소쿤티어리 씨는 "가족들도, 삼춘들도 사투리를 쓰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됐어요. 가끔 제 주위의 친구들은 사투리를 쓰는 저를 보고 '할머니가 다 됐다'며 놀리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동네이웃 어른들과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라고 웃어보였다.

이어 그녀는 "사투리도 중요한 문화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국의 문화처럼 제가 사용하는 제주도 사투리가 점점 사라질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면서, "오늘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 사투리에 대해 더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녀는 "우리 모두 제주도 사투리 잊지 말앙 하영 쓰멍 살게마씨. 저도 노력허쿠다. 겅 허난 우리 아이들허고도 제주도 사투리로 말 허멍 잘 살아보게 마씨. 지금까지 제 말 들어줭 고맙수다"라며, 유창한 사투리를 뽐내며 무대를 내려갔다.

박소영 씨.<헤드라인제주>

8년 전 베트남에서 제주도로 시집 온 박소영 씨의 한국어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세미정장을 차려 입고 무대에 오른 그녀는 굉장히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발휘해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특히 '문화의 차이'라는 주제로 발언에 나선 소영 씨는 다소 충격(?)적인 일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베트남에서는 아기가 잠을 자지 않고 보채면 배게 밑에 칼을 넣어둬요. 그러면 잠도 잘 자고, 자다가 놀라는 일도 없어진대요. 그런데 저도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아기가 잠을 못 자고 밤새도록 칭얼대더라구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밤중 아기가 칭얼댈 때마다 베개 밑에 칼을 넣어뒀다던 그녀. 어느 날은 남편이 그 칼을 발견해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서로 다른 문화에 오해가 생기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졌던 것.

소영 씨는 "신랑이 하는 말이 '여보, 내가 당신네 나라 문화를 배울게'라고. 그렇게 신랑은 다문화센터에 가서 베트남 문화를 열심히 배웠어요. 배우고나서부터는 신랑이 제 입장을 많이 이해해줬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영 씨는 "제주사람과 서울사람이 결혼을 해도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고 들었습니다. 하물며 베트남과 한국입니다. 당연히 베트남과 한국의 문화는 다릅니다. 어느 쪽의 문화가 잘못되거나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끝으로 "제 이름은 박소영 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비록 대한민국에서 탯줄을 끊지는 못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살아갈 이 대한민국에 뼈를 묻을 것입니다"라면서, "서로의 문화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합시다"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참가자들에게 서툰 한국어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었다. 한국어를 통해 한국문화를, 제주어를 통해 제주문화를 이해하는 노력에 참가자들과 관객 모두 서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제9회 전도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 수상자 명단.

▲대상 없음

▲일반부
△금상=서리타 커날
△은상=크얄, 카빌루스 체릴
△동상=리 소쿤티어리, 진희, 다오티 탄뚜엔

▲학생부
△금상=잠스랑자브 사랑블렉
△은상=나카무라 마사야, 전수청
△동상=사울레, 오시마 미유, 스리야코 프린세스 졸리아 블레스
△인기상=토올.<헤드라인제주><헤드라인제주>

<오미란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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