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결단' 내린 도의회, 분위기는 왜 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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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결단' 내린 도의회, 분위기는 왜 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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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속앓이 도의회, 증액없는 추경처리 반응 '3인3색'
"도민위한 결단"..."따르긴 따르겠지만"..."그래도 이건 좀"

사상 초유의 대규모 예산삭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경예산 증액없이 원만한 처리'라는 파격적 합의사항을 발표한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통 큰 결단'을 보여줬던 모습과는 달리 내부에 흐르는 분위기는 극히 싸늘하다.

지난 2일 제328회 임시회가 개회한 후, 이번 회기에 상정될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의원들 대부분은 말을 아끼고 있다.

구성지 의장이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제96주년 3.1절에 맞춰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합의사항이 발표된 후, 제주도정과 의회간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다.

그동안의 요구를 사실상 100% 관철시키게 된 제주도정은 '표정관리'에 들어간 듯 보이는 반면, 의회 내부는 '찜찜'해 하는 기운이 역력했다.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의원들도 있었다.

물론 의원들 대다수는 이번 임시회가 개회하기 직전에 구 의장이 모종의 '결심'을 발표할 것이란 예상은 하고 있었다. 지난 25일 열린 비공개 전체의원 간담회에서 구 의장이 도정과 협상을 할 뜻을 밝히며 전권을 일임해 달라며 의원들을 설득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를 믿고 맡겨달라"는 구 의장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전권위임은 다수 의견으로 묵시적 합의가 됐다.

그러나 협상의 결과는 다소 뜻밖이라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의회 내 반응은 크게 3가지 측면으로 표출되고 있다.

도민을 위한 결단이라는 측면, 잘못된 합의라는 반응, 또 하나는 수긍은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는 지적 등이다.

'불가피한 결단'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더 이상의 파국은 없어야 한다는 강한 명분을 들고 있다.

지난 설 연휴에 성난 도민들의 민심을 많이 전해들었고, 도정과의 예산갈등으로 인해 애꿎은 도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루속히 제1회 추경예산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합의사항 발표 기자회견은 원 지사에게 양보를 한 것이 아니라, 도민의 입장을 우선 생각해 내린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 지사가 증액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천명한 상황에서, 만약 도의회가 종전처럼 예산심의를 하고 삭감하고 증액할 경우 예산은 또다시 '부동의'와 '부결'이라는 악순환을 맞았을 것"이라며 "이에따라 '증액' 부분을 과감히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보는 시각에 따라 '굴복했다'고 평가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이번 사안은 의회가 양보한 것으로 본다"며 "제주의 발전을 위해 감수해야 할 사안이었고, 더 멀리 내다 본 행보였다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반면 이번 합의에 반발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공식석상에서는 발언을 자제하고 있지만, 한 의원은 "지역에서 시급한 민원예산이 많은 데, 의회에서 반영했으면 하는 예산은 전액 제외시키고 도정에서 제출한 것만 놓고 심의하자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분을 냈다.

이 의원은 "증액 자체가 법으로 가능한 것이다. '의회가 신규비목 등을 설치할 수 있다'고 법에 명시된 것은 어려운 사람이나 시급한 예산일 경우 증액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의장이 독단적으로 증액 여부를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큰 틀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뤄내는 것은 동의하지만, 증액이 '절대' 불가하다는 것은 의회의 고유권한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의원 개개인이 입법기관인데, 의장이 하자는대로 따라가야하나. 우리가 졸병이냐"며 적극 반발했다.

세번째로는 '증액없는 심의' 결정에 수긍은 하지만, 뭔가 방법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의원들도 적지않다.

한 의원은 "구 의장이 전권을 일임해 달라는 말을 할때 증액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은 받았으나, 그동안 흘러온 예산갈등의 흐름 속에서 구 의장이 원 지사와의 협상에서 어떤 '복안'을 갖고 있지 않겠나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막상 발표문을 보니, 의회는 100% 양보하고, 도정은 100% 실리를 얻은 결과물이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했다.

또 다른 의원은 "의회가 대규모 삭감을 한 것에 대한 도민들의 민심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그렇다고 공동기자회견 모양새로 해 합의사항을 발표하는 것은 약간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설령 이런 결단이 옳고 불가피한 것이라 하더라도, 원 지사의 '의회 무시' 논란과 '증액불가' 입장, 아니면 방송 인터뷰 논란에 대해 사과를 받거나 어떤 해명도 듣지 못한채 의회만 100% 양보한 것 아니냐"며 "의회 권위나 모양새를 봤을 때, 좀 답답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합의사항이 '증액없는 원활한 추경예산 처리'였다면, 굳이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어야 했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한 의원은 "합의사항이라 한다면 도정과 의회 양쪽에서 어떤 양보와 타협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러나 내용을 보면 의회만 모두 내려놓는 것으로 돼 있다. 이럴 경우 차라리 공동기자회견이 아니라 의회에서 단독 기자회견을 갖고 중대발표하는 형식을 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회 차원의 기자회견에서 이런 사항을 발표했다면 의회의 모양새도 좋았고, 의회가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다는 의미를 더 크게 부여받았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공동기자회견을 하면서 마치 원 지사의 요구에 의회가 백기를 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기류는 대체적으로 발표된 합의사항에 대해서는 수긍을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도, '결심' 내용의 발표형식이나 방법 등에 있어서는 적지않은 이견이 표출되는 분위기다.

도의회는 오는 9일 상임위원회별 예산 사전심사, 그리고 10일부터 12일까지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가 예정돼 있다.

'결단' 발표 후 견제기능 위축 내지 심의의결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가운데, 이제 관심은 의회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추스리고 예산처리 방향을 잡을지에 쏠리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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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2015-03-05 10:27:59 | 211.***.***.1
두 기관의 권한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업무적 직권도 국민을 위해 행사해야 한다. 도민 민의를 무시하면 그건 배임에 가깝다. 작게 보면 자기범주 내 자화자찬을 만들 수 있어도 즉흥적 교만에 기까운 행동이다. 공동기자회견은 두기관의 협력하여 제주발전과 미래의 이상을 현실화하는데 공감했기 때문이라 보기에 도민들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제주의 환경,경제 그리고 미래꿈에 더 정열을 다해주는 도정과 도의회가 되길 빈다.

지략 2015-03-05 08:37:55 | 39.***.***.33
정치는 명분이 아주 중요한데 그래서 어떤 명분을 만들어내느냐가 논리 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가 있지요.이번 예산 논쟁은 한쪽은 치밀했고 또 다른 한쪽은 그에 휘말린 모양새입니다 그러니 휘말린쪽은 말 그대로 찝찝한거지요

도민 2015-03-04 21:51:04 | 210.***.***.147
증액은 의회의 고유 권한 아니며
지역주민에게 꼭 필요한 예산이라면
데이터와근거을 집행부에 제출하면 될거라고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