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후기 쓰면 '6시간 봉사활동' 인정, "이게 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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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쓰면 '6시간 봉사활동' 인정, "이게 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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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초등학교 '여수엑스포 문예공모', "학부모가 기가막혀"
"강요는 아니지만 꼭 가세요?"..."6시간 자원봉사 확인서 발급?"

며칠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엄마가 여름방학 안내사항을 담은 가정통신문 얘기를 하며 의아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정통신문의 내용은 관람객 800만명을 돌파하며 12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2012 여수세계박람회(EXPO 2012 YEOSU KOREA)'와 관련해서다.

여름방학 중 박람회를 관람한 학생 중 희망학생에 한해 문예작품 공모를 한다는 내용이다.

'교내 대회'로 명시하고 있지만, 이 문예작품 공모는 사단법인 전국학교운영위원연합회 한국학부모총연합이 국토해양부와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그리고 17개 시.도교육청의 후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박람회를 관람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글짓기(산문)과 그리고, 신문만들기 3개 분야로 공모하고 있는데, 방학이 끝난 후 제출하면 교내 심사를 거쳐 금상, 은상, 동상으로 나눠 시상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보낸 교내 대회는 '예선전'의 성격이다. 교내 대회와 시.도교육청 대회 등을 거친 후, 전국단위 본 공모 심사 순서로 진행된다.

따라서 교내대회에서 금상작품으로 선정된 2개 작품은 교육청에 제출된다.

800만명 관람객 목표를 달성하며 12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여수세계박람회. <헤드라인제주>
800만명 관람객 목표를 달성하며 12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여수세계박람회. <헤드라인제주>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적인 행사참여 안내 수준으로, 이의를 제기할 만한 내용은 없는 듯하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큰 행사인 여수세계박람회를 널리 알리고 홍보.문화전파로서의 역할을 해나가자는 취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통신문을 받아든 학부모가 화가 난 이유는 따로 있다. 학교교육의 방향이 뭔가 잘못 나아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학교에서 모든 가정에 마치 여수세계박람회를 반드시 다녀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지나치게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안내문 말미의 '특전' 사항에서 "문예작품 공모에 참가한 학생은 '봉사활동 확인서(6시간) 발급' 예정입니다."라는 문구 때문이다.

첫번째, 문예작품공모 교내대회에 대한 그의 생각은 '기회의 균등성' 내지는 '교육의 불평등' 차원이다.

문예작품공모 그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공모에 응하기 위해 반드시 여수세계박람회에 다녀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여수는 항공편 혹은 배편을 이용해야 하고, 더욱이 여름방학 기간에는 성수기인 관계로 비용도 만만치 않다.

흔쾌히 혹은 여름휴가계획과 맞물려 참여하는 가정도 있을테지만, 비용부담 때문에 그렇지 못하는 가정도 많을 것이란게 이 엄마의 생각이다.

형편이 여의치 못한 가정의 자녀나 학부모들은 더욱 소외감을 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의 감정을 배려하지 못한채 지나친 참여독려로 나아가는 것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차라리 교내대회로 가져나가지 말고, 전국대회 주최측에 출품할 작품을 응모한다는 간접적인 매개역할 정도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수세계박람회에 다녀온 가정들을 중심으로 한 교내행사를 갖고 "애국조회시 시상식을 하고, 금상작품은 교육청에 제출할 예정"이라는 안내문 내용은 위화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한 학교의 여수세계박람회 문예작품공모 교내행사 알림 내용. 하단에 공모에 참여하면 6시간 봉사활동 확인서 발급이란 내용이 눈길을 끈다. <헤드라인제주>
두번째는 문예작품공모에 응한 학생들에 대해 '봉사활동 확인서(6시간) 발급'이라는 문구가 굵은 글씨로 강조돼 있다. 이는 학교당국이 오히려 자원봉사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논란을 사게 한다.

많은 학생들이 방학 중 자원봉사활동 확인서를 발급받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정리해주는 사서 도우미를 하거나, 쓰레기 줍고, 청소를 돕고 하며 봉사활동 확인서를 발급받고 있다.

뙤약볕에서 쓰레기 줍고 하면서 봉사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것이 교육적 의미가 있는 것임에도, 여수세계박람회에 갔다온 후 문예작품 공모에 응모하면 '6시간 봉사활동 확인서 발급'이란 특전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을 다녀왔을 뿐인데, 거기에 자원봉사를 한 것으로 보고 인정해 준다면, 결국 자원봉사 인증도 돈으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학부모들의 볼멘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문예작품공모를 제주 학교에서 교내행사로 가져나가는 것도 논란이지만, '6시간 봉사활동 확인서 발급'은 교육방향이 뭔가 잘못 엇나간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학교에서 아예 노골적으로 "여수에 다녀온 학생들만 예뻐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왜 학교에서 이토록 무리수를 두며 문예작품 공모를 가져나가려는 것일까.

학교측에서는 일부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은 후, "문예작품 공모는 강요사항이 아니라 그냥 안내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왜 여수엑스포 관람후기 공모를 자원봉사활동시간으로 인정해주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엑스포에 참가해서 이 내용을 주변에 알리는 것도 봉사라고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원성심 편집팀장. <헤드라인제주>
이 논리가 성립된다면, 학생들에게 굳이 휴지줍기와 같은 도우미 자원봉사활동을 권하지 말고, 한라산이나 세계자연유산 제주 등을 둘러보게 한 후 이를 친구들이나 주변에 알려주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일부 학교에서 이번 여름방학 문예작품공모 계획을 마련하기에 앞서, 지난 7월4일 경남 창원에서 열렸던 전국 17대 시.도교육감협의회 관련 언론보도가 눈에 띈다.

전국학교운영위원연합회가 제안한 '여수세계박람회 관람 문예작품 공모'에 대해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들이 적극 지원하기로 합의를 봤다는 내용이다. 

이번 교내 공모 개최의 시달과정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헤드라인제주>

<원성심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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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2012-08-15 17:29:11 | 110.***.***.47
좋은 글입니다 여성의 섬세함이 느껴집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기자분 같네요
학부모입장 많이 다루어 주세요

학교의 현실 2012-08-13 20:16:18 | 175.***.***.2
초등학교 교육이 이모양인데 쯔쯔. 이 나라 교육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구만

이건 또 무슨말이래요? 2012-08-13 13:14:53 | 112.***.***.180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이건 무슨말이랍니까? 봉사?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야 할 듯 싶네요? 이러다 엑스포 다녀오지 못한 우리애만 왕따 당할려나?

불쌍한 학생 2012-08-13 07:55:26 | 59.***.***.109
엑스포 못가면 왕따되겠네

ㅉㅉㅉ 2012-08-12 22:23:12 | 14.***.***.98
이래서 교육이 방향을 잃었다는 말이 나오는거다
참 한심한 교육현실

생각할수록 열받네요 2012-08-12 18:22:43 | 220.***.***.50
교육이 이래서는 안되죠.....기사 잘 읽고 갑니다.

교육청에 점수따고 싶었던게지 2012-08-12 17:52:11 | 175.***.***.253
교육청도 교육청이지만 학교가 정말 이상하다. 자원봉사 발급을 그렇게 남발해도 되는건지. 교육적으로 정말 아니다

지나가다 2012-08-12 17:19:46 | 121.***.***.114
아무리 교육청 지시라지만 이건 아니지....어떻게 선생님들이 공모참가하면 자원봉사 6시간 끊어준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면서 자원봉사에 ㄷ해 제대로 가리킬 수 있겠어요?

sss 2012-08-12 16:46:45 | 14.***.***.58
이 나라가 하는 짓이 그렇지....으이구.. 교육청이고 나라고 정책이구 다 멍충이.......

엑스포가 뭐길래 2012-08-12 16:38:40 | 119.***.***.237
이건 아니네요...
공무원 동원에 모자라 초등학생 동원까지....
봉사에대한 바른길을 가르쳐 주셔야하는 교육자분들께서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엑스포가 기가막혀 2012-08-12 16:20:19 | 119.***.***.95
대박난 엑스포... 그 이면에는 이런 우수꽝스런 관람 동원이 있었기 때문. 거기다 자원봉사 인증까지 참, 어처구니없는 엑스포구만

정말 기가 막히는 일 2012-08-12 15:47:32 | 175.***.***.253
딱 걸렸다. 어느 학교이신지?
자원봉사 시간을 제멋대로 발급하면서 봉사의 의미를 뭐라 설명할까?
문예공모 본선 주최측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서 오버를 한듯하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