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포괄수가제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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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비 포괄수가제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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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의 진료실 창가에서] <12> 포괄수가제 논란
"정부와 의사협회는 의사와 국민을 살릴 길을 찾아라"

며칠 전 의사협회로부터 전자메일을 통해 공문이 도착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 시간부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탈퇴합니다.”로 시작하는 공문에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후 ‘건정심’) 위원회 구성의 불합리함과 그로 인한 이번 포괄수가제의 강제 표결 통과를 앞두고 의사협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으로서 ‘2012년 5월 24일’이라는 날짜로 끝을 맺고 있다.

이번 포괄수가제 확대 조치를 할 것에 대한 건정심은 2012년 5월 30일에 열릴 것이므로 사전 엄포의 의미와 의사협회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다고 볼 수 있다.

▲포괄수가제란 무엇인가?

국민들이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면 해당 병‧의원에서는 진료비 수입을 얻게 되는데, 거기에는 행위별수가제, 포괄수가제, 인두제, 총액예산제, 봉급제 등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외래 중심의 동네의원에 대해서는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가 적용되고, 수술 및 난위도 높은 치료를 하는 병원급에 대해서는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행위별수가제는 진료 행위에 따라서 진료비가 달라지는 것인데, 충수돌기염(맹장염) 수술을 하더라도 투여한 약이나 재료, 입원 날짜에 따라 진료비가 달라지는 것이고, 포괄수가제는 말 그대로 세세한 구분 없이 같은 수술에는 일정한 비용을 적용하는 것이다.

정부나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포괄수가제가 훌륭한 제도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두 진료비 지불제도에 대해서는 어느 것이 더 우월한 정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행위별수가제에서는 의사들이 필요한 치료방법을 더 적용하려고 하여 더 나은 재료나 수술 방법을 쓰게 되어 환자들로부터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반면, 진료비가 거기에 따라 올라가므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포괄수가제에서는 치료 방법이나 재료에 구분 없이 일정한 진료비가 적용되므로 진료비 상승 요인을 줄일 수 있고, 환자들은 진료비가 얼마인지 항상 알 수 있어서 편리하다. 하지만, 획일적인 치료 방법이나 재료를 사용하게 되어 자칫 치료의 수준이 낮아지거나 부작용에 대한 대처를 하기 힘들 수 있다. 더욱이 병원에서는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싼 재료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폐기해야 할 치료도구들을 소독해서 재사용하는 일이 빈번할 것이다.

이러한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용의 편리함과 의료비 상승 억제라는 명목만으로 포괄수가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이번에 건정심을 통과하여 2012년 7월 1일부터 확대‧적용시키려고 하고 있다. 사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이미 7개 질환에 대해서 시범사업을 통해 많은 의료기관에서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그것을 확대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7개 질환에 대한 수술에는 편도수술, 제왕절개술, 자궁적출술, 탈장수술, 항문(치질)수술, 충수절제술, 수정체수술을 말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고 수술기법이 비교적 어렵지 않거나 표준화된 것들을 말한다.

▲포괄수가제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의 홍보대로 의료비 상승을 낮출 수 있고, 국민들이 수술 치료비를 알기 쉽게 되어 편리하다면 이번처럼 의사협회는 왜 반대를 하는 걸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들 이면에 복잡한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느 정부든지 의료정책을 펼치면서 정책부담을 위해서 재정 계획을 충분히 확보하거나 계획을 발표한 때는 없었다. 그것은 진보적 정부이든 보수적 정부이든 관계없었다. 김대중 정부에서의 의료제도 개혁이나 일차의료제도 안정화 노력에는 재정이 없었고, 박정희 정부의 전국민건강보험 실시 때는 오히려 의료 수가를 줄여버렸으며, 김영삼 정부 시절에 주치의제도 시행 의지가 처음 엿보였을 때도 거기에 합당한 재정 계획은 없었다.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도 의료정책을 많이 발표하였지만, 제대로 된 재정을 수립하지 않고 정책을 발표만 하면서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 어느 나라도 의료정책을 새로이 하면서 돈을 들이지 않은 경우는 없다. 프랑스에서도 2006년 주치의제도(Preferred Doctor Scheme)를 처음 도입할 때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동네의원 의사들의 수입을 보장해 주면서 시작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일차의료 전담의(GP)들의 질을 높이고,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의료재정을 확대했고, 의사들의 수입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영국 일차의료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번 포괄수가제의 문제는 반대 논리로 내세우는 진료의 질 저하 우려나 의료기술의 발전 저해라는 것보다는 사실 거기에 들어가는 의료재정을 확보하지 않고 제도를 바꾸려는 것에 있다고 봐야 한다. 심장 수술 못 하는 흉부외과, 분만을 하지 않는 산부인과가 늘어가는 한국의 의료 현실, 힘들고 어려운 의료는 피하려는 형국은 의사들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지금 강조하고자 하는 적절한 의료재정에 대한 고민이 없는 정부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포괄수가제는 의료비를 완만하게 만들고, 국민들에게 유용한 의료제도임에 분명하다. 의사들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을 보면서 불안해 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이번 포괄수가제는 앞으로 이어질 병원 진료나 많은 수술들에 대한 확대가 예정되어 있다. 그러자면 분명히 정치권에서는 의료전달체계와 일차의료 개선과 더불어 의료재정을 적재적소에 어떻게 들여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 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먼저 답을 만들어야 가능하리라고 본다. 아울러 의사협회도 더 이상 반대 논리로만 치닫지 말고 자신들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건강권과 안정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대승적으로 판단하기를 권한다. 오랫동안 의사들이 정부의 정책에 강제적으로 협조했던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의사들이 주체적으로 주치의제도나 일차의료 개선 방안에 대해서 이렇다 할 정책들을 내놓지 못했던 것도 문제가 아니던가? 긴 안목으로 정책 제안을 하면서 정부와 손잡고 국민의 건강을 더 높이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한다. <헤드라인제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건강보험이 주를 이루는 한국의 의료에서 재정 안정을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건강보험에 의한 의료공급이 가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로서,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를 결정하기도 하고, 병의원의 진료비 및 수가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구이며,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보험 재정 건전화 특별법」에 그 근거를 두고 2002년에 설립되었다.

심의위원회 구성은 보건복지가족부차관을 위원장으로 하여 건강보험의 가입자(노동자, 농민, 시민단체 등 추천)를 대표하는 위원 8인, 의약계(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등 추천)를 대표하는 위원 8인, 공익(행정부, 공단, 심사평가원 등 추천)을 대표하는 위원 8인으로 이루어져 총 25인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이 중에서 의사협회에서 추천한 위원은 단 3명뿐으로 의사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힘든 구조여서 의사들은 불공정 구조라고 지적해 왔다.

* 이 글은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www.saesayon.org)에도 게재됩니다.

고병수 365일의원 원장 그는...

   
고병수 원장. <헤드라인제주>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제주시 '탑동365일의원'에서 진료하고 있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과 '구로건강복지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온국민주치의제도'가 있고, 우리나라의 일차의료제도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의 <진료실 창가에서> 칼럼은 영국 의료제도와 국내 영리병원 도입 논란과 관련한 주제에서부터 직접 진료를 하면서 느끼는 점 등을 글로 풀어내면서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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