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밤톨 만 하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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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혼...밤톨 만 하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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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50>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 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몸을 위해서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는 이 마음을 써야 한다. 그리고 짝짓기를 하고 아이를 가지려 할 때도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
만일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 칠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 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 도 함께 죽는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만은 그대로 남아 있는다. 그래서 평생 욕심 부리면서 살아온 사람은 죽고나면 밤톨만한 영혼밖에 남 아있지 않게 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의 한 대목입니다. 이 책은 그야말로 저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혼자만 간직하기에 너무 아까워서 이 책 몇 권을 더 사서 지인들에게 읽으라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도 읽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이 책은 두고두고 곁에 두어서 읽어도 좋을 만큼 아주 감동적인 내용이었으니까요.

이 책의 지은이 ‘포리스트 카터’는 아메리카 인디언 체로키족 출신입니다. 대자연의 깊은 산속에서 조부모와 살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책 속에 풀어놓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는지는 미국의 ‘서부개척’의 역사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소위 ‘개척정신’이라 미화되는 야만과 침탈의 역사는 곧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처절한 멸망사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대학시절 읽었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아메리카 인디언 멸명사’라는 책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의 땅을 먹었다."는 어느 인디언 추장의 표현 그대로입니다. 어느 미군 장군은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미국은 쓸모 있는 땅과 자원을 모두 차지하고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이라는 미명을 가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땅에 몰아넣었었습니다. 그 안에서 많은 인디언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일부 살아남은 인디언들이 산속 깊이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지은이의 조부들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목사는 그 굵다란 막대기로 내 등을 내리쳤다. 처음에는 몹시 아팠다. 그래도 울 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예전에 가르쳐주신 적이 있다. 내가 발톱을 뽑아야 했을 때, 인디언이 고통을 참는 방법을. 인디언들은 몸의 마음을 잠재우고, 대신 몸 바깥으 로 빠져나간 영혼의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고통을 바라본다. 몸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육체의 마음뿐이고, 영혼의 마음은 영혼의 고통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매를 맞으면서 몸의 마음을 잠재웠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중에서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외부적인 고통을 그들은 내부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영혼의 힘입니다. 감히 외래신이나 강요된 이념 따위가 그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랜 시절 경험으로부터 유전자처럼 형성된 삶의 지혜가 대자연의 깊이만큼 쌓여있었으니까요.

‘개척정신’은 아메리카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들을 쫓아내고,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다가 그 다음에는 전 세계로 눈을 돌려 무수한 나라들을 침탈해서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이 아메리카합중국이라는 대제국은 세계 도처에서 그 위세를 맹렬히 떨치고 있지 않습니까.

앞에서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대학시절에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라는 인디언 멸망사 내용을 가지고 시극詩劇으로 각색하여 공연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탐욕과 탕진의 거대자본이 제주도를 잠식해 들어오는 상황을, 인디언 멸망사에 빗대어 쓴 희곡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주도 또한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지나갈 것이다
내 심장을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스테판 빈센트 베넷의 시, 「미국의 이름들」 중에서

위정자들의 논리대로 제주도를 개발하니까 제주도 우리 주민들 살림 좋아졌습니까? 물론 외형적인 성장과 발전은 분명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경쟁하듯이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며칠 밤 자고나면 새 길이 뚫리는 등 많이 변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네 삶이 정말로 좋아졌습니까?

인디언들이 대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그 소박한 삶의 사상이, 저는 우리네 삼무三無 삼다三多의 정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나누고 서로 배려하는 삶의 가치관이 존중되는 그런 공동체가 지금 어느 정도나 남아있습니까?

나눔이나 배려는커녕 혼자 독식하려는 못된 제국의 버릇이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도 이미 물들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남보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자리 더 센 힘을 독야청청 대물림하려는 그런 속물근성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만큼 우리의 영혼은 고갈되고 그야말로 밤톨만하게 되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그보다 더 커지면, 영혼의 마음은 땅콩만 하게 줄어들었다 가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말하자면 영혼의 마음을 완전히 잃 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 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 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 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걸 할 수 있고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 도 더 커진다.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해하지도 못 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 니라고 하시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모든 사람을 잘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밤톨 만한 영혼을 갖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중에서

아, 나의 영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요?
당신은요?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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