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퀴 돈 우 지사, 현장 목소리 어떻게 반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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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퀴 돈 우 지사, 현장 목소리 어떻게 반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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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마무리된 '주민과의 대화', 남겨진 과제는

각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듣기 위해 우근민 제주지사가 직접 곳곳을 방문한 주민과의 대화. 지난 3월부터 약 석 달간에 걸쳐 진행됐던 긴 여정이 마무리됐다.

우 지사는 이 기간동안 추자면을 제외한 제주지역 42개 읍면동을 돌아다니며 동지역은 20명 내외, 읍면지역은 30명 내외의 지역주민을 초청해 주민들의 고충을 전해들었다.

중간중간 제주도를 방문한 외부 주요인사들을 맞이하고, 해외 출장 일정까지 소화하면서 기어코 모든 읍면동을 순회한 것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

특히 지역의 자생단체장뿐만 아니라 일반 상점을 운영하는 업주나 다문화가정 구성원들까지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 있어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될 법한 상황이다.

지역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근민 제주지사. <헤드라인제주>
지역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근민 제주지사. <헤드라인제주>

# 화기애애한 대화..."들을만한 것만 골라 들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각 지역의 동장이나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참여 인사가 그것이다.

각 지역을 순회하며 진행됐던 주민과의 대화는 대체적으로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우 지사는 주민들에게 "그냥 동네 사람과 이야기 하듯이 사투리 써가면서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주문했고, 중간중간 농담을 섞어가면서 참석자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뤄진 자리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들과 회포를 푸는듯 했던 '주민과의 대화'는 진짜 귀 담아야 할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민들 중에는 제주도정의 행보를 좋게 평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못마땅하게 여길만한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 기간 중 진행됐던 대화 시간에서 긴장감이 감도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소 민감한 사안이 오갈 것이라고 예상됐던 지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중 해군기지 문제로 갈등을 빚고있는 대천동을 방문했을때는 이같은 맹점이 특히 두드러졌다. 한시간 가량 진행된 대화시간동안 지사나 주민이나 가장 큰 지역현안인 해군기지의 '해'자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다들 일부러 쉬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우도지역으로 가보자.

우도주민들이 가장 첫 손에 꼽는 숙원사업은 '연륙교 건설'이었다. 총 1575명의 인구 중 연륙교 건설을 원한다는 서명부에 이름을 기록한 주민이 1116명이나 될 정도로 주민들은 연륙교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우 지사가 우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무려 11가지의 사업이 제안됐지만, 연륙교 이야기는 조금도 거론되지 않았다.

당초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우도면장은 참석할 주민들에게 연륙교 현안은 토론회 말미에 꺼낼 것을 제안했고, 주민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시간상의 문제로 결국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노형동의 경우도 로터리의 교통체증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안을 살짝 빗겨간 모습이었다. 올해 초 김병립 제주시장이 노형동을 방문했을때까지만 해도 교통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주민들이 있었던 것과 대조되는 상황이다.

서귀포시 대륜동에서는 급기야 항의시위까지 벌어졌다.

해양환경 파괴의 우려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던 법환 해녀들은 지난달 1일 우 지사가 대천동주민센터를 방문했을 당시 "어째서 우리에게는 대화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냐"며 주민센터 앞마당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똑같은 주민들인데 대화 자리에 있어 자신들을 논외로 친 것에 격분했던 것이다.

지난달 1일 대륜동 주민센터 앞에서 해군기지 반대 시위를 하고있는 법환어촌계 해녀들. <헤드라인제주>

참석자들을 선정한 지역의 읍면동장으로서는 감히 '지사님'의 심경을 거스를 수 없었을 터. 다소 '친 도정' 성향에 기운 주민들이나, 중립적인 인사를 자리에 앉히는게 속이 편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야 된다.

그러나, 도민사회에 깊숙히 들어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놓친 꼴이 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형식적으로 차려놓은 밥상만으로는 우 지사 자신이 밝혀왔던 것과 같은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 수 많은 숙원사업...'선택과 집중' 필요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주민과의 대화 일정은 끝났지만, 각 지역에서 전해들은 주민들의 숙원을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숙제다.

특히 나름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추진해야 할 것과 추진하지 못할 것을 분류했겠지만, 무슨 일을 하려고 하든 '예산'을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도정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우 지사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예산상의 어려움을 넌지시 밝혀왔다.

지역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근민 제주지사. <헤드라인제주>

초기에 읍면동 지역을 방문할때는 서두부터 "이런 자리에 오게되면 '여기까지 온 김에 선물 하나 줘야될 것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듣게되는데 이 같은 생각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선심성 예산을 경계했다.

그는 "선거때까지만 해도 이것저것 다 해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막상 이 자리에서 보니 무엇을 해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어디서 구해와야 하는지가 문제"라고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제주지역 가용예산이 지난 2009년부터 해마다 약 1100억원씩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 왔다.

주민들의 의식 변화도 당부했다. 지원을 요청하는 주민들에게 "도움을 받다보면 더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손만 벌리지 말고 자체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볼 것을 주문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로 대표되는 이 발언은 제주시 조천읍, 화북동, 서귀포시 동홍동, 대천동, 표선면 등 10군데가 넘는 지역에서 거론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부합하면 어쨋든 예산을 들여 사업을 추진해야 상황.

그렇다면 이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배부른 동네에 디저트를 얹어주는 지원이 아닌 배고프고 힘든 지역의 어려움을 돌봐야 한다.

지역의 경제수익 창출을 위해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도로를 매끄럽게 다시 뽑는 것도 필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단김에 처리해야 할 만큼 시급한 것이냐고 물으면 답은 확실하다.

버스가 오지 않아 병원에 가는데 3시간이 허비되는 지역, 농작물의 작황이 좋지 않아 당장 내년 살림을 걱정하는 지역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귀담아야 한다. 지역노인들이 모여있을 만한 변변찮은 시설이 없어 눈치를 보며 남의 건물을 빌려야 하는 지역의 사정을 살펴야 한다.

우 지사는 제안된 내용들에 대해 "관련 부서와 함께 다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제 결실을 보여줘야 할 때다.

지사의 입장에서야 "검토해봤는데 안될 것 같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겠지만, '오매불망' 지사를 기다리던 주민들의 입장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주민과의 대화는 주민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지사의 정치적 철학을 내비친 자리가 됐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 목적은 주민들의 애로사항과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사 스스로가 "직접 와보니 이 지역의 문제를 알겠다"고 말한 것처럼 꼭 필요한 사업이 추진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할만한 결과물이 도출될 것을 기대해본다.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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