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난? 그딘 엘리베이터 어신디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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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난? 그딘 엘리베이터 어신디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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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이야기] (36) 문화인

지난 학기에 함께 수업을 들었던 동생에게서 연극구경을 가자고 연락이 왔다.
“누나, 연극 보러 안 가실래요? 경린이랑 셋이 보고 저녁도 같이 먹어요. 누나.”
“어, 신철아! 연극? 가면 좋겠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네, 알아봤더니 편의시설이 돼있어요. 걱정 안하셔도 돼요.”
“그럼 연극보고 오랜만에 경린이랑 저녁 같이 먹을까, 그럼?”

수업을 하는 동안 같은 조가 되어 자주 만나게 되면서 친해진 동생들과 함께 연극보러가기로 약속을 하고 통화를 끝냈다. 설레는 마음으로 침대 곁에 엎드려 졸고 있는 마음이 녀석을 바라보는 내 기억 속에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일이 불쑥 떠오른다. 재작년 가을 즈음, 사촌동생이 연극표를 가져다주는 바람에 동생들과 함께 한라홀로 연극공연을 보러 간적이 있다.

"요즘 공연은 거의 거기서 하더라."
"응, 시설이 좋게 된 거 닮아. 요새는 공연을 거의 거기서만 하더라, 문예회관보다……"

촌것들이 웬일로 연극을 다 보고 호강한다는 둥, 이제 우리도 문화인이 되는 거냐는 둥,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는 동안, 연극에 참여하는 사촌동생의 신랑에게 줄 조촐한 꽃다발 준비하고 공연장인 한라홀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는데 함께 가기로 했던 언니가 다가왔다. 또 연극표를 가져다 준 사촌동생도 다가와 반가운 눈인사를 나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 자매들은 수다로 인사를 대신하며 휠체어를 타고 함께 건물로 향했다. 주출입구에는 경사로가 상당히 길게 U자를 그리며 설치가 되어 있었다.

"우와! 여기 경사로 엄청 좋다!"하고 나는 감탄을 했다.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설치했다는 경사로 중에는 너무 가파르거나 좁아서 이용이 쉽지 않은 곳들이 종종 있음을 경험하는 터였기에 경사로를 보면서 내심 불안해하고 있던 우려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연극을 보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느 곳에서건 눈에 쉽게 띄어야 할 엘리베이터가 쉽게 보이지 않자, 동생과 언니 그리고 사촌동생은 직원과 엘리베이터를 찾아 1층 로비를 뒤지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내 앞엔 까마득해 보이는 계단이 멋진 곡선으로 재크의 콩나무 덩굴처럼 뻗어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에고……" 계단을 바라보는 내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야! 여기 엘리베이터 어신게. 무사 직원들도 어시멘?"
사방으로 돌아다니다 다가온 언니의 상기된 외침.

"게메?…… 여기 무사 엘리베이터 설치가 안되영 있시멘?"
표를 가져다주었던 사촌동생의 안타까운 미안함.

"무사 어시멘? 여긴 지은 지 얼마 안되신디."
휠체어를 밀고 온 동생의 푸념.
 
"나랑 여기서 기다리고 이시크메 올라강 보고 와."
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빙글빙글 맴돌다 뚫고 오르려는 찰나,
 
"언니! 아줌마파워를 한번 발휘해보게."
사촌동생이 두 팔을 걷어붙일 기세로 내 휠체어 손잡이를 쥔다.
 
"여기 계단이 너무 많아서 위험허크라. 윤미야, 업혀. 휠체어타지 말고 그냥 올라가게."
"업어지잰? 내가 업으카?"
"응, 괜찮아. 꽉 잡아이."

가냘픈 언니의 작은 등에 업혀 제대로 매달리지도 못하는 나를 동생들이 뒤에서 받히고 밀며 우리 자매들은 그 길고 높이 앉아있는 2층을 향해 올라갔다. 정신없이 연극을 보고 또다시, 언니는 나를 업고, 사촌동생은 내 휠체어를 끙끙 메고 내려왔다.

결국 연극관람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연극공연무대에 오른 배우와 연극이 아니라 내가 공연장을 오르내리는 퍼포먼스가 되어 한류스타 못지않은 주변의 시선과 주목을 받으며 공연의 막이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자 우리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제일 먼저 물었다.
"잘 봐 저냐?"

그 물음의 저의는 그냥 잘 봤냐는 것이 아니라 출발할 때 바라보던 어머니의 걱정스러움이 담긴 복잡한 마음이었다.

"응, 겐디, 언니가 나 업엉 갔닥왔닥 허잰허난 혼난."
"아이고, 경해시냐 게난? 그딘 에리비탄(엘리베이터) 어신디라냐?"
"은아네영 언니영 촞아봐도 어선게. 우리가 못촞아신가?"
"무사게? 그런딘 그런 거 이서사 장애자덜도 구경허지 수울건디. 어떵행 어서시니게?"
"응, 나 업엉 구경시키잰허난 오늘 언니 막 고생해서."
어머니는 전화기로 달려가 언니에게 전화를 한다.
 
"윤자냐…… 이디 윤미네 막 들어왔져. 윤미 구경시키잰허난 니만 폭삭  속아신게게…… 게난, 그딘 에리비탄 어신디라냐?"

언니와 통화를 하는 어머니를 두고 나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와 이불속으로 기어들었다.
 
"오늘 힘들었지. 푹 자."
"응. 그래도 재밌언. 연극도 재미이선게."
"기지. 내년에도 티켓 갖고 오랜행 또 가게."
"응. 그러게. 잘 자."
이불을 여며주는 동생의 말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찍어야 했었다.
 
괜히 서럽고 아팠다.
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멍청한 생각도 떠오르고,
아니, 잘 간 거야…… 하는 오기도 생기고,
왜 그런 곳에 엘리베이터가 없을까? 바보 같은 의문도 생기고.

하긴, 학교에서조차 강의실도 정문으로는 장애인경사로가 없는 건물이 많아 남는 게 시간인 장애인인 나는 맨날, 뱀 또아리 틀듯 빙글빙글 건물주위를 돌아 두더지 굴 찾아들 듯 복잡하고 위험한 주차장을 가로지르고 눈치껏, 요령껏 알아서 다니라는 데 뭐…… 이런 배배 꼬인 심사도 생겼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내 팔자에 무슨 연극이며 영화냐…… 됐다그래라."며 놀부 심보가 턱 밑으로 더덕더덕 생겨서 지금껏 어딜 가려는 마음을 가져보지 못하고 지냈다.

그런 내게 연극을 보러가자는 연락은 움츠러든 마음속에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봄눈처럼 솟아오르게 한다.

"과연, 이번엔 형아 등에 업혀서 올라가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지 않아도 될까, 마음아?"

옆으로 꼬리를 팔랑거리며 다가와 눈을 빤짝이는 마음이의 머리를 스윽 쓰다듬으며 조바심 나는 마음을 달래보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바늘처럼 자라나는 걱정을 외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렇게 무언가를 하고자 죽을 용기를 쥐어짜면서 문을 박차고 나설 때마다, 세상의 단단한 옹벽에 부딪혀 고무공처럼 튕겨날 때마다, 용기란 녀석은 튕겨난 거리보다 더 멀찍이 달아나 숨어버린다. 그럴 때면 세상을 향해 뽀득뽀득 이를 갈게 되면서도 '다시는 나가지 않을 거야!'하고 풀이 팍 죽어서는 왕소금 잔뜩 쳐진 김장배추마냥 기운을 잃고 도리질만 해대며 벌벌 떨게 되고는 한다.

"마음아! 가자!"
그러나 또다시 세상의 옹벽에 부딪혀 고무공처럼 튕겨져 제주앞바다로 퐁당, 빠지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문밖으로 나가보련다. 나가지 않으면 더욱 후회할 테니 말이다.

우리도 교양 있는 문화인이 되어보자고요!~ 아자!^^~
두발이 있어야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 <헤드라인제주>

강윤미씨 그는...

   
강윤미 객원필진.<헤드라인제주>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하지만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훈훈하게 해 줍니다.

그 의 나이, 벌써 마흔을 훌쩍 넘었습니다. 늦깎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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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2011-01-31 11:16:20 | 119.***.***.217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두 문장이 울림으로 오래도록 남아있네요.. ^^